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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 무지의 만용, 진주만 공습 예견한 이 책… 미국은 무시하고 일본은 실천했다

바람아님 2015. 7. 24. 12:27

(출처-조선일보 2012.12.15 이태훈 기자)


中 신해혁명 참여한 유일한 백인 '호머 리' 日 침공 32년 전 경고

필독서로 읽은 일본은 예언대로 필리핀 점령


무지의 만용

호머 리 지음|한상일 옮김|기파랑|348쪽|1만4000원


1941년 12월 7일, 미국은 일본의 하와이 진주만 기습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90분 만에 전함 21척과 비행기 188대, 군인·민간인 2400여명을 잃었다. 

그런데 이미 32년 전, 일본이 미국을 공격하고 필리핀을 점령할 것을 예견한 

군사전략가가 있었다. 척추장애인이었으나 누구보다 전술전략과 전쟁사에 밝았던 

호머 리(1876~1912). 일본군은 공습 5일 뒤인 12일 필리핀을 침공했고, 

26일 만에 마닐라를 장악했다. 

모두 호머 리가 '무지의 만용'에서 예언한 그대로였다.


이 책은 군사전략가 호머 리라는 인물을 발견하는 기쁨을 준다. 

또한 '평화에 취해 전쟁을 잊지 마라'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강력한 

메시지를 보여준다.


불과 36세의 나이에 뇌졸중으로 타계하기까지 호머 리는 중국과 미국을 넘나들며 

잠시도 쉬지 않고 활동한 풍운아. 장애에도 불구하고 군인이 되기를 열망했고, 

백인으로는 유일하게 신해혁명에도 참여했다. 

그의 풍부한 군사지식과 전략적 사고에 매료된 쑨원은 "하늘 아래 가장 위대한 군사 이론가"로 높이 평가하며 대장 계급을 줬다.


1909년 이 책이 출간됐을 때, 당시 미국 여론을 지배하던 감상적 평화주의자들과 군부는 호머의 주장을 "공상"으로 비웃었다.

반면 일본에서는 1910년 '일미필전론(日米必戰論)'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소개됐고, 6개월 만에 22판이 인쇄됐다. 

일본 군부는 이 책을 장교의 필독서로 지정했다. 

진주만 기습 뒤 시사주간지 타임은 "호머가 숙고할 시간을 30년이나 줬음에도 미국은 일본의 야심을 깨닫지 못했다"고 

한탄했다.


신해혁명에 참여한 호머 리가 중국식 복장을 한 모습. /기파랑 제공


호머는 이 책에서 인류는 과거, 현재, 미래를 통틀어 전쟁으로부터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며 "일본과 미국은 태평양을 놓고 충돌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미국이 일본과의 전쟁에 대비하지 않고 '무지의 만용'을 부린다면 패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당시 미·일의 군사적 상황, 군사조직, 전략적 사고, 

국민정신 등을 통계와 함께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 100년의 시차 때문인지 책에는 

백인·남성우월주의자, 제국주의적 인식도 노출된다.


하지만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은 평화의 시대에 준비해야만 한다는 호머 리의 

경고는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지극히 단순하고도 평범한 진리다.


"국가가 멸망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 아니다. 

다만 국민이 국가가 멸망의 상태로 넘어가는 것을 알면서도 예방할 수단을 취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관심과 무지의 만용 속에서 국가와 민족은 기념비와 헌법, 

그리고 허영심과 더불어 영원히 이 지구에서 사라진다"(4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