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입력 2015.07.31
릴레이 기고 ⑥ 장훈 중앙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신의주와 중국 단둥을 연결했던 압록강 단교(斷橋). 1911년 일제가 대륙 진출을 위해 건설했으나 6·25전쟁 때 미군의 폭격을 받아 끊어졌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장훈/중앙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강렬한 역사의 이미지들을 뿜어내는 이 특별한 공간은 마치 압축파일을 풀듯이 과거를 보여주지만, 동시에 우리에게 내일을 향한 상상력을 무한 자극한다. 31인의 오디세이 주자들은 저마다 평화의 미래를 향한 꿈을 꾸었을 터인데, 5박6일의 시간여행 내내 필자가 꾸었던 꿈은 우리 마음속의 단교를 잇는 꿈이었다. 물론 우리는 끊어진 압록강 단교를 이음으로써 남·북·중 경제협력을 평화의 지렛대를 삼을 수도 있고, 잊혀진 북·중·러 접경지역에 철도와 물류를 관통시켜 통일의 기반을 삼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보이지 않는 단교를 제대로 잇기 전에는 이 같은 지렛대들은 그저 무심한 구조물에 불과할 수도 있다.
지난 20여 년 민주화의 실험을 거치면서 통일을 향한, 평화를 향한 우리 사회의 꿈과 비전은 극심한 단절과 분열을 겪어 왔다. 역대 정부의 평화·통일정책은 현실주의와 이상주의 외교 사이에서 진자 운동을 거듭했지만, 그 간격은 좁혀지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 3000정책과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사이에는 거대한 분열의 강이 흐르고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지난 10여 년간 여야 국회의원들 사이에서 대외관의 분열은 오히려 확대되어 왔다는 점이다. 중앙일보와 한국정당학회가 2004년 이래로 실시해온 여야 소속 의원들의 대외관 조사결과를 보면 대북지원, 한·미동맹의 미래 등에 관한 견해에서 19대 (2012년 조사) 여야 소속 의원들의 견해 차이는 이전 17대, 18대 의원들보다 더욱 벌어지고 있다.
넷째 날 백두산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이뤄진 간이 세미나에서 필자가 이러한 우려스러운 추세를 설명하자 평화 오디세이 참가자들의 질문 세례가 쏟아졌다. (1)의원들의 대외관의 분열의 원인은 무엇인가? (2)의원들뿐만 아니라 시민들도 대외관의 분열이 확대되고 있는가? (3)대책은 무엇인가?라는 질문들이 이어졌다.
다행스럽게도 시민들 사이에 대외관의 대립은 지난 10여 년간 확대되지는 않는 추세다. 모두들 남남갈등, 친미-반미의 분열을 걱정하지만 정작 시민들 사이에서 대북관, 대미관의 거리감은 늘어나지는 않고 있다. 오히려 문제의 핵심은 시민사회의 갈등을 조정하고 통합해야 하는 제도권 정치가 우리 안의 갈등을 조장하고, 분열의 강을 넓히는 데에 있다.
평화 오디세이의 마지막 밤을 보낸 옌지(延吉)에는 180만 명의 한국인 디아스포라가 모여 산다. 이들이 걸어온 팍팍한 삶의 여정은 19세기 후반 서세동점이라는 대변동 앞에서 개화파로, 척사파로, 의병운동으로 분열된 채 끝내 망국의 길로 치달았던 당시 정치엘리트들의 분열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5년 오늘, 거대한 권력이동의 기운은 다시 한번 우리 삶을 휘감고 있다. G2 시대에 내장된 예측불가의 긴장감, 각국 민족주의의 발흥, 일본의 우경화 등은 다시 한번 대격변기가 우리 앞에 열리고 있음을 상징한다. 대격변 앞에서 가장 먼저 할 일은 우리 안의 분열을 치유하는 일이다. 이는 곧 친미와 반미로 갈라져 있고 현실론과 이상론으로 끊어져 있는 우리 안의 마음의 단교를 서로 잇는 일이다. 마음의 단교를 이어서 마침내 분열의 강을 건너야만 우리는 평화와 통일에 다가설 수 있다. 지난 100여 년간 인민에서 국민으로, 그리고 시민으로 성장해 온 우리 시민들이 바로 이러한 평화 오디세이를 주도해야 한다.
장훈 중앙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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