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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한국 주력산업, 진짜 위기다

바람아님 2015. 8. 2. 09:15

중앙일보 2015-8-1

 

제조업 강국 한국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조선·반도체·철강·자동차 할 것 없이 주력산업이 매출 감소와 경쟁력 악화로 허덕인다. 당장의 부진보다 더 큰 문제는 좀체 돌파구를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밖으로는 중국에 치이고 일본에 밀린다. 안에서는 구조 개혁이 겉돌고 기업가 정신이 식어 가고 있다.

 

 

 주력산업의 성적표를 들여다보면 한숨밖에 안 나온다.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의 조선 ‘빅3’는 지난달 29일 사상 최악인 4조7509억원의 적자를 냈다. 몇 년 치 부실이 쌓인 것이고 일정 시점 한 번에 적자를 반영하는 조선업종 회계 시스템의 특성을 감안한다 해도 과하다. 조선산업이 외화를 벌어들이기는커녕 국민 세금으로 적자를 메워줘야 할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것이다.

 

 그나마 괜찮다는 반도체도 만만치 않다. 삼성전자의 2분기 실적은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시장의 기대에는 많이 못 미쳤다.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전년 같은 기간보다 각각 7.3%, 4% 줄었다. 앞날은 더 불안하다. 중국은 국가 전략 차원에서 반도체 투자를 늘리고 있다. 미국 인텔은 마이크론테크놀로지와 손잡고 낸드플래시보다 1000배 빠른 차세대 메모리반도체 생산에 뛰어들겠다고 밝혔다. 한국 반도체산업은 미·중 G2의 공세를 견뎌내야 하는 무거운 숙제를 안게 됐다.

 

 자동차는 수출·내수 동반 부진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다. 5개 완성차 업체의 2분기 수출은 80만9643대, 수출액은 114억8676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0.2%, 3.9% 줄었다. 현대·기아차의 2분기 영업이익도 두 자릿수 감소했다. 한국의 자존심 철강산업의 어려움은 좀체 풀릴 조짐이 없다. 올 들어 5월까지 수출액이 11% 넘게 줄었다.

 

 진짜 위기는 현재가 아니라 미래에서 온다. 블룸버그는 최근 시가총액 기준 세계 500대 기업에 한국 기업이 3개라고 발표했다. 10년 전 7개에서 크게 후퇴했다. 같은 기간 중국은 7개에서 48개로 늘었다. 한·중 역전 추세가 빨라도 너무 빠르다. 오히려 길게 보면 중국의 강력한 추격이나 엔저에 힘입은 일본의 화려한 부활은 되레 작은 문제일지 모른다. 앞으로도 이런 상황이 나아질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왜 그런가. 한국 기업이 특유의 혁신 에너지를 잃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창업 세대의 역동적인 기업가정신은 찾아보기 어렵다. 현실 안주에 급급하다. 30대 그룹의 사내유보금은 1년 새 40조원 가까이 늘어 710조원에 달한다. 도전에 나서지 않는 기업, 구조 개혁과 규제 철폐에 미온적인 정부가 합작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주력산업의 위기는 한국 경제의 위기다. 이대로 방치하면 성장 엔진이 멈추고 한국호는 좌초할 것이다. 정치·사회 전 영역에서 혁신적 사고와 변화가 절실하다. 정부는 깜짝 놀랄 만한 규제 철폐와 구조 개혁을, 기업은 필사즉생의 기업가정신으로 재무장해야 한다. 지금 변하지 않으면 남는 건 절망뿐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