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입력 2015.04.20
[김종필 증언록 '소이부답'] <21> 현대사 드라마 '황태성 사건'①
새벽잠 깨운 장모의 다급한 전화
“장인 친구 황태성 북에서 왔어예”
‘거물 간첩 황태성 사건’은 한 편의 드라마다. 북한 정권 무역성(省) 부상(副相)인 황태성은 김일성 지시로 남파됐으며 밀사(密使)를 자처했다. 황태성은 박정희의 셋째 형(박상희·朴相熙)과 동갑 친구. 박상희는 김종필(JP)의 장인이다. 그는 박정희·JP와의 면담을 요구한다. 지금까지 이 사건 한쪽엔 억측과 의심이 존재했다. JP는 “세상에 떠도는 말 중엔 알고 보면 허튼소리가 많다”며 사건의 진상을 공개 증언한다.
1961년 10월 15일 오전 3시쯤 ‘따르르릉-’ 전화벨 소리가 잠을 깨웠다. 누가 이 시간에 전화를 한단 말인가. 느낌이 좋지 않았다. 보통 일이 아닐 거란 생각과 함께 수화기를 들었다.
“큰일 났어예.” 경북 구미에 계신 장모님의 다급한 사투리 목소리였다. “아니, 뭐가 큰일 났습니까.” 한참 머뭇거리며 말을 못하던 장모가 입을 열었다. “예리 아빠(JP)는 모를 텐데… 옛날 장인 친구인 황태성이라는 사람이 이북으로 넘어갔는데 이 사람이 내려왔어예. 나한테 박정희 의장하고 예리 아빠를 만나게 해 달라고 하네예.” 장모는 조귀분(趙貴粉)이고 그분의 시동생이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이다.
장모의 목소리는 겁에 질린 듯 덜덜 떨렸다. 듣고 보니 장모가 당황하실 만도 했다. 나는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라고 물었다. 장모는 “나는 아무것도 못합니다. 그 사람들은 못 만날 거라예”라고 답했다고 했다. 장모는 밤중에 구미경찰서로 가서 경비전화를 이용해 내게 전화를 거셨다. 아마 중앙정보부장의 장모라서 경비전화를 빌려 준 모양이다. 나는 “장모님, 염려 마세요. 제가 다 처리하겠습니다”고 한 뒤 전화를 끊었다.
내게 황태성은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북한에서 내려왔고 박정희 의장과 나를 만나겠다고 하다니···. 뭐하는 사람인지, 어디에 있는지 당장 찾아야 했다. 나는 곧바로 중앙정보부 대공수사 담당인 고제훈(高濟勳·육사 8기) 제3국장을 찾아 비상을 걸었다. 수사요원에게 총동원령을 내려 이북에서 내려온 황태성이란 자를 잡아 오라고 지시했다. 황태성과 알 만한 연고인이 누가 있는지를 조사한 끝에 그와 동향(경북 상주)인 중앙대 시간강사 김민하(金玟河·현 세계일보 회장)를 찾아냈다. 10월 20일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그의 집에 황태성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 요원 3명이 서울 흑석동 김민하 집을 덮쳤다. 그 집에서 황태성을 붙잡아 연행해 와 정보부 3국이 신문을 시작했다.
황태성이 누군데 박정희 의장을 만나자고 하는 건지 나는 장모에게 여쭸다. 장모 말씀으론 황태성은 돌아가신 우리 장인(박상희)과 어려서부터 같이 자란 죽마지우(竹馬之友)였다. 장인은 박 의장의 셋째 형이다. 황태성은 장인의 집에 자주 놀러 오는 사이였고 박 의장과도 어려서부터 잘 알았다고 한다. 박 의장이 대구사범학교를 다닐 때 형 친구인 황태성을 ‘형님 형님’ 하며 따라다녔다고 한다. 황태성도 그런 박 의장을 아꼈다고 한다. 46년 10월 ‘대구 10·1 사건’에 관여한 황태성은 사건 끝 무렵에 검거를 피해 이북으로 넘어갔다. 거기서 김일성이 대우를 잘해 줘 북한에서 무역성 부상(차관)을 지낸 무게감 있는 인물이었다.
정보부의 수사 결과 황태성은 임진강을 건너 61년 8월 31일 서울에 잠입했다. 김일성이 내려보낸 게 틀림없었다. 소지품 속에서 공작금도 나왔다. 그가 휴전선을 넘어 내려올 땐 북측의 안내인 두 사람이 따라붙어 파주까지 길을 안내했다. 황태성이 서울에 도착해 먼저 찾아간 곳은 김성곤(金成坤·공화당 재경위원장·쌍용그룹 창업자)이 사장으로 있던 동양통신사(남대문로2가)였다. 남로당(南勞黨) 재정부장을 지낸 김성곤은 황태성과 친한 사이였다. 하지만 김성곤이 일본 출장 중이어서 만나지 못했다.
황태성은 대신 고향 친구 아들인 김민하를 찾아갔고, 그 집에서 50일간을 숨어 지내다가 잡혀 왔다.
연행된 황태성은 정보부 수사요원에게 똑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박정희 의장과 김종필 정보부장, 둘 중 한 사람만이라도 만나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내가 만나서 얘기할 게 있다. 만나면 다 해결된다”는 소리만 했다. 왜 남쪽에 내려왔느냐, 어떤 지시를 받고 넘어왔느냐, 아무리 물어도 입을 굳게 다물고 대답하지 않았다. “박정희 의장이나 김종필 부장을 만나서 말할 게 있지, 너희(신문관)한테는 말하지 않겠다”고 계속 버텼다.
그렇다고 내가 그를 직접 만날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가 무슨 계략을 꾸미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수사를 맡은 고제훈 국장이 머리를 짜냈다. 정보부에 파견된 치안국 박문병 경감이 나와 얼굴 생김새가 비슷했는데 마치 나인 것처럼 박 경감을 위장시켜 황태성을 신문해 보기로 했다. 황태성이 내 얼굴을 본 적이 없어서 눈치채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10월 22일 오후 반도호텔 객실에서 검은 선글라스를 낀 박 경감이 정보부 수사관들과 함께 황태성과 대면했다. 박 경감은 “내가 김종필입니다”고 먼저 인사했다. 그와 몇 마디 말을 나누던 황태성이 대뜸 “가짜는 저리 가라”고 소리쳤다. 가짜 김종필인 걸 금세 알아챈 것이다. 아마도 황태성은 남파되기 전에 사진으로 내 얼굴을 익혀 뒀을 것이다. 질문도 제대로 못해 보고 10분도 안 돼 취조는 무산됐다. 황태성이 내 대역(代役)에게 속았다는 시중의 얘기는 잘못 알려진 것이다.
황태성을 잡아서 가둬 놓고도 나는 박정희 의장에게 아무 보고도 하지 않았다. 박 의장은 과거 좌익 혐의 전력 때문에 사방에서 사상을 의심받던 차였다. 김창룡의 숙군(肅軍) 태풍에 휩쓸려 사형 구형까지 받았던 사람이다. 그가 늘 걱정하고 신경 쓴 문제가 그것이었다. 박 의장이 이 보고를 받으면 얼마나 놀라고 당황할지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가급적 조용히 내 선에서 알아서 처리하려고 했다. 하지만 황태성이 김일성 지시로 내려온 게 분명한 이상 박 의장에게 보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황태성을 체포한 지 며칠이 지나 장충동 최고회의 의장공관으로 찾아갔다.
“각하, 황태성이라는 사람을 아십니까?” 내 질문에 박 의장이 놀란 눈으로 날 쳐다봤다. “아니, 임자가 그 사람을 어떻게 알아?”
“놀라실 것 없습니다. 그 사람이 평양에서 내려와 각하와 저를 만나게 해 달라고 졸랐다고 합니다. 장모에게서 전화를 받고 제가 알았습니다. 수배해서 흑석동에 잠복하고 있던 걸 잡아 경찰서에 넣어 놨습니다. 신문에서는 의장님이나 정보부장을 만나 얘기하겠다면서 일절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박정희 의장 얼굴이 갑자기 새하얘졌다. 박 의장은 내 보고에 놀라 “그래? 그래?”라고만 하고 말을 못했다.
그 심정을 나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박 의장을 조금이나마 진정시키려고 이렇게 물었다. “어려서 황태성에게 ‘형님, 형님’ 하고 그러셨다면서요.” “응. 그랬어…. 형님 친구니까 집에도 자주 놀러 왔지.”
가만히 뭔가를 생각한 뒤 박 의장은 “뭘 하려고 내려왔대”라고 물었다.
“말을 안 하니까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저희가 수사하면서 느끼기로는 김일성의 지령을 받고 내려왔습니다. 아마도 황태성이 (박상희 장인과) 친했으니까 각하하고도 친했으리라고 본 것 같습니다. 각하와 만나 남북 간 현안을 얘기하고 다리 놓으라는 명령을 받고 내려온 듯합니다. 그래서 각하와 저를 만나게 해 달라고 하고 있습니다.”
박 의장은 “난 안 만나”라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 얘기한 그게 다냐”고 물었다. “답니다. 다른 건 없습니다. 각하께서 걱정하실까 봐 미리 보고드리지 않고 잡아넣은 다음에 보고 올리는 겁니다.” 박 의장은 다시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정리=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인물 소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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