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5-9-2
![](http://t1.daumcdn.net/news/201509/02/chosun/20150902030307821gorb.jpg)
무리수까지 두어 가며 문패 달기를 밀어붙인 정부가 내세운 가장 큰 이유는 우편물 배달이었다. 1968년 서울의 57만 가구 중 문패 없는 집이 24만 가구(42%)나 됐다. 시내의 월 우편물 1320만 통 중 14만 통은 끝내 번지수를 못 찾고 반송됐다. 1982년에도 전국 750만 가구 중 170만 가구(23%)가 문패를 안 달았다. 한 해 12억 통이나 되는 우편물 중 1300여만 통이 반송되고 있었다. 정부는 수십년간 연례행사처럼 문패 달기 운동을 벌였지만, 그야말로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집들이 수두룩했다. 판잣집 주민, 세입자처럼 달고 싶어도 못 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문제는 일부러 안 다는 사람들이었다. 체신부 우정국장은 문패 안 다는 3가지 부류 중 첫 번째로 '자기 노출을 꺼리는 저명인사나 부유층'을 꼽았다. 1970년 시가 3000만원(오늘의 약 17억원) 이상 호화주택 소유자가 330명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탈법하며 축재한 사람들이 사는 '도둑촌'도 사회 문제가 된다. 1970년 초 박정희 대통령이 "고위 공직자·정치인 중 호화주택 보유자는 3개월 안에 처분하라"고 강력 지시하자 '도둑촌'의 문패들이 상당수 사라졌다. 야당이 국회에서 이를 문제 삼자, 답변에 나선 정부 관계자는 "문패 달기 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동문서답해 국민을 우롱하느냐는 비판을 받았다.
요즘도 단독 주택에는 문패를 걸기도 하지만 거의 사라진 셈이다. 호화주택이 아니더라도 사생활을 지키자니 문패 걸기는 망설여진다. 최근 어떤 아파트 주민이 "온 식구 이름 다 넣어 문패 예쁘게 걸었어요"라고 블로그에 자랑했더니 이런 댓글이 붙었다. "우편함 뒤져 누가 사는지 확인해 보이스 피싱 하는 세상인데, 좀 걱정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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