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 2015.09.15
통일 후 완충지대 北韓 없이 美 군사동맹국과 접경 不容
'南 주도 흡수통일 땐 北에 軍 진주시켜 막을 것' 전망도…
중국 '二重 동작' 감안하면서 유리한 때 기다릴 줄 알아야
한반도의 통일에는 두 갈래의 길이 있다. 하나는 무력통일이고, 다른 하나는 평화통일(또는 평화적 통일)이다. 무력통일은 전쟁에 의한 것이기에 수백만명 이상의 희생을 전제로 한 통일은 거론할 가치도 없고 의미도 없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평화통일이다.
평화통일에도 여러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남북한 당사자의 합의에 의한 통일이다. 아마도 연방제 통일이 그 모형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주변 강대국 혹은 '대주주' 국가들의 합의에 따른 통일이다. 이 경우는 한 체제가 다른 체제에 흡수되는 형식의 통일이다. 구(舊)소련의 동의와 종용에 따른 동독의 자진 붕괴와 서독의 흡수가 대표적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번 중국에 다녀오면서 말한 '평화통일'은 어느 경우를 염두에 둔 것일까? 그는 "앞으로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해서 중국과 같이 협력해 나가기로 이야기가 됐다"며 곧 그 방법에 대해 '다양한 논의'가 시작될 것처럼 말했다. 그의 '평화통일'은 무력통일도, 적화통일도, 연방제통일도 아니고 아마도 북한 주변국(중국·러시아)의 '협력'과 암묵적 종용에 따른 한국의 흡수통일일 것이다.
하지만 중국 측은 딴소리한다. "남북이 대화를 통해 관계를 개선하고 화해와 협력을 추진하며 최종적으로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것을 환영한다"는 것이다. 남과 북이 알아서 하는 것이지 중국이 나설 일이 아니라는 것을 못박고 있다.
통일 문제에서 중국의 역할을 기대하는 것은 애당초부터 환상이다. 중국은 북한이 주도하는 통일이라면 몰라도 한국이 주도하는 어떤 통일(그것이 평화적이든 무력적이든)도 용인할 수 없다. 그것은 미국과 군사동맹을 맺고 있는 나라와 국경을 접할 수 없다는 중국의 오래된 '안보 제1조'에 기인한다. 6·25전쟁 때 중국 군대가 뒤늦게 참전한 것은 북한이 패망해 미군이 압록강·두만강에 포진하는 상황을 묵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UN군이 한반도의 가장 잘록한 허리(즉 진남포와 원산)에서 북진을 멈추고 휴전했더라면 북·중 국경은 살아남고 따라서 중공군의 참전은 합리화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키신저의 회고록 내용은 중국이 잠재적 적군(敵軍)에 의해 포위되는 판도를 얼마나 두려워했는지를 말해준다. 지금도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어떤 나라이건 그곳에 미군의 군사기지가 설치되는 경우 중국은 공공연하게 군사적으로 개입할 것이다.
그것은 거의 모든 강대국에 적용되는 안보 논리다. 통일독일이 구소련과 국경이 맞닿아 있었다면, 즉 중간에 폴란드라는 완충지대가 없었다면 소련은 통독을 용인하지 않았을 것이다. 러시아가 크리미아 반도를 먹고 우크라이나 사태를 유발한 것도 그곳에 미국의 군사기지가 설치되는 것을 방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러시아와 국경을 접한 나라치고 미국과 군사동맹을 맺은 나라가 없다. 1960년대 케네디 미 대통령이 쿠바를 침공했던 것도 쿠바가 미국의 코앞에 소련의 미사일 기지를 허용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역사적 실례에 비추어 볼 때 오늘날 중국은 아무리 북한이 밉상이라 해도 미군의 기지를 보유하고 있는 한국이 통일을 주도하는 상황을 용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이 한·미 동맹을 파기하고 미군 철수를 단행한다면 또 모를까, 중국은 지금으로서는 북한의 완충지대로서의 필요성 때문에라도 우리의 통일 노력에 '협력'할 리가 없다. 심지어는 북한 내의 정치적 혼돈으로 우리의 주도적 통일 전망이 밝아지는 상황에서도 중국이 북한에 진주해 우리의 흡수통일을 가로막을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박 대통령은 신뢰를 모든 일의 바탕으로 삼는 정치인이다. 그래서 이번 중국 방문에서도 중국 측의 환대에 무척 고무되고, 또 저들의 말에 무게를 싣는 경향을 보인다. 그래도 중국의 더블 플레이를 속으로 소화하면서 저들이 말하는 것이 외교적 립서비스일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중국만 그러는 것이 아니다. 패권적 성향의 나라들은 여기서 이 말 하고 돌아서서 딴소리하는 것을 능사로 삼는 경향이 있다.
역대 대통령을 비롯해 우리의 지도자들은 통일에 대해 너무 속을 드러내는 경향이 있다. 통일을 거론해야 지도자의 자질이 있는 양, 통일을 '염원'해야 민족성에 투철한 지도자인 양 치부되는 세태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지도자는 통일에 일가견을 펼치고 사자후를 토한다. 일종의 한국적 '대통령병(病)'이다. 그러나 통일은 우리 혼자 하는 게임이 아니다. 북한이 있고, 한국 내 이질분자(異質分子)가 있고, 남과 북 각각 '대주주'들이 있고, 또 남북의 경제력이 걸려 있는 복잡하고 난해한 문제다.
지도자는 통일을 '정치 상품'으로 삼지 말고, 실현 가능성도 없이 통일에의 희망을 남발하지 말아야 한다. 훗날 통일에 대비한 여건을 내밀히 쌓아나가되 말을 아끼고 유리한 상황을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그러면 어느 날 통일은 느닷없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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