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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영의 컬처 스토리] 이방인이 그린 한국..깊이는 제각각

바람아님 2015. 10. 7. 00:44
중앙일보 2015-10-5

지금부터 100년 전, 공통점이 많은 두 작가가 있었다. 둘 다 유럽 출신으로 일본에서 우키요에 다색목판화 기법을 공부했고, 한국을 여러 차례 여행했으며, 일본식 판화로 한국인의 일상과 풍물을 묘사했다. 그러나 작품 분위기는 딴판이다. 강원도 원주 ‘뮤지엄 산’에서 지금 전시 중인 스코틀랜드 작가 엘리자베스 키스(1887~1956)와 프랑스 작가 폴 자쿨레(1896~1960)의 판화 얘기다.

 자쿨레의 작품은 색채가 산뜻하고 장식적이고 이국적이다. 심지어 한국을 묘사했는데 한국인이 봐도 이국적일 정도다. ‘마음의 폭풍, 서울’(사진 왼쪽, 부분)이란 판화를 보면 우키요에 미인도의 전형적인 얼굴과 포즈를 그대로 가져오고 머리 모양과 옷만 한국식으로, 그나마도 부정확하게 바꿨다. 또 다른 판화 ‘신랑’을 보면 단령(관복)은 입었으나 사모 대신 깃털 달린 전립을 썼고 얼굴은 서양인에 가까운 기이한 모습이다.


 반면에 키스의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일본식 판화 기법을 사용했지만 유럽회화적 구도와 한국적인 인물 묘사를 혼합해서 일본색이 덜하고 서정적이다. 무엇보다도 한국인의 몸가짐과 옷차림이 피상적이지 않게 섬세히 묘사돼 있다. 작품 ‘정월 초하루 나들이’(사진 오른쪽, 부분)를 보면 엄마와 아이들의 정다운 모습과 함께 그들이 곱게 쓴 풍차(남바위에 뺨을 감싸는 볼끼가 달린 전통 방한모)의 정교한 묘사가 인상적이다. 키스는 또한 “한국 여인들의 신발은 매우 아름답다”며 멋들어지게 치켜 올라간 신발 코를 정확히 묘사했다.


문소영</br>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문소영/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자쿨레와 키스 작품의 차이는 한국인에 대해 얼마나 진지하고 애정 어린 시선을 가졌는가의 차이로 읽힐 수 있다. 자쿨레는 동남아시아 풍물 판화로 더 유명한데, 한국은 그에게 오리엔탈리즘적 흥미를 유발하는 여러 아시아 나라 중 하나였을 뿐인 것 같다. 그가 일본에서 한국 출신 조수의 딸을 양녀로 삼았다는데도 말이다. 반면 키스의 판화에는 한국인에 대한 깊은 관심과 공감이 자연스럽게 스며 있다. 그녀가 한국 여성 독립운동가의 슬프고도 기품 있는 모습을 묘사하는 글을 썼다는 게 놀랍지 않다.


 어쨌든 키스는 물론 자쿨레의 작품도 과거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사료로서 가치를 지닌다. 이뿐 아니라 한국이 외국 문화예술에서 많이 다뤄지는 것에 급급해하는 현대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있다. ‘어떻게’ ‘얼마나 깊이 있게’ 다뤄지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점 말이다.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