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온라인도 추석 몸살을 앓는다. 명절만 되면 인터넷에 가족들을 흉보는 글이 넘쳐난다. 잔소리를 늘어놓는 집안 어르신들을 비롯해 스마트폰을 망가뜨렸다는 조카, 얌체같이 명문대 잠바를 입고 오는 친척 동생, 술만 먹으면 행패를 부리는 작은할아버지에, 올 때마다 명품 구두와 가방을 선보이며 부러움과 질투를 부르는 막내며느리까지…. 마주 앉은 가족들의 사소한 오점을 가상 공간에 올리면 정작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들이 ‘좋아요’를 누르며 폭풍 공감을 쏟아낸다. ‘우리 집에도 그런 사람 있다’는 뜻이다.
돌아보면 어릴 때의 추석이 제일 좋았다. 항상 용돈에 인색했던 부모님들과 달리 주머니에 고액권을 찔러 주시는 집안 어른들이 오시길 얼마나 손꼽아 기다렸던가. 또한 군침만 흘리던 장난감을 선뜻 손에 넣는 재미는 그 얼마나 쏠쏠했던지. 그런 명절이 머리가 굵어지면서 슬슬 싫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수능을 앞둔 때와 청년 백수 시절은 끔찍한 고문이었다. 집안 어르신들은 “누구는 반에서 1등 했다더라”거나 “친구네 자식은 공기업에 취업했대”라는 말씀으로 가슴을 후벼 팠다. 그나마 지금은 그런 잔소리를 속으로 되묻는 요령이 생겼다. “제 친구네 부모님은 벌써 집을 마련해 줬다던데, 노후 준비는 잘 하셨나요?” 물론 혼잣말로 삭일 뿐이다.
명절 때마다 반복되는 가족들 간의 칼부림도 이런 갈등의 끝에서 발생하는 게 아닐까 싶다. 이번 추석에는 마침 조선시대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을 다룬 영화가 인기를 끌었다. 영조가 아들 사도세자와 끊임없이 충돌하다 결국 뒤주에 가둬 죽인 역대급 가정 폭력인 ‘사도’다. 이 영화를 보면서 올해는 가족들이 각기 다른 등장인물에 스스로를 대입해 보며 감정을 다스리리라 기대했다. 그런데 웬걸, 추석 연휴를 마치고 취재해 보니 이번에도 가정 폭력 신고가 3000건을 넘어섰다. 수퍼문이라고 좋아했더니 올해는 보름달마저 붉게 물드는 ‘수퍼 블러드 문’이란다.
바야흐로 ‘그리운 추석’은 희미해지고 가족과 친척들 간에 핏빛 선명한 ‘고문의 추억’만 남는 분위기다. 언제쯤 가족끼리 모처럼 한자리에 모여 화목을 다지는 민족의 대명절로 돌아갈 수 있을는지….
손광균 JTBC 경제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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