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敎養·提言.思考

<살며 생각하며>세상과의 이별 연습

바람아님 2015. 10. 3. 01:54

문화일보 2015=10-2


나는 별들이 사라지는 블랙홀을 거대한 우주의 소용돌이치는 구멍일 것이라고 상상하고, 죽음의 세계를 그런 구멍 속으로의 영원한 소멸로 이해한다.

바람 부는 날 빨랫줄에 걸린 와이셔츠처럼 펄럭펄럭 너울너울 살아갈 과분한 자유를 얻은 이튿날 내 생의 이면지에 붓글씨로 썼다.

'이제 이별을 연습해야 하는 시간이다.'

이별 연습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의 찬란한 세상 굽이굽이를 더듬어보고 쓸어보고 주물러보고 속살과 그 이면을 응시하고 다가가서 안아보고 냄새 맡아보고 밟아보고 입 맞추고 핥고 빨아보는, 그러한 이별 연습이다.

지혜로운 선인들은 자기가 장차 이승을 떠날 때 입을 수의(壽衣)를 미리 지어놓고, 담겨 떠나게 될 나무 관(棺)을 '내 집'이라고 말하며 제작해놓고 정성스럽게 옻칠을 한 다음 잘 말려 옷가지들을 담아 간직하거나 곡식을 넣어두고 먹기도 했다.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풍광 좋고 양지바르고 건조한 곳에 가묘(假墓)를 만들어놓고 그 앞에 백일홍이라고도 불리는 배롱나무나 동백나무를 심어 가꾸기도 하고, 그곳으로 산책을 나가 그 앞에 앉아 먼 하늘이나 떠가는 구름을 바라보기도 했다.

죽음을 무서워하거나 흉하게 생각지 않고 친근하게 여기고, 그것을 극복하는 방편으로 수의와 관과 가묘를 활용했던 것이다. 그것은 죽어 사라지지 않고 '죽음을 살겠다'는, 초월의 의지였던 것이다. 자연 친화적인 삶과 안빈낙도의 연장선상에 죽음 극복이 있었다.

나는 장차 이승을 하직한 다음 내가 묻힐 무덤 자리를 따로 마련하지 않았다. 오래전에, 작가실인 토굴 앞마당 가장자리에 삼층 석탑과 석등을 세웠다. 석탑은 보림사의 삼층 석탑을 축소한 것이고, 석등은 무위사의 것을 본떠 만든 것이다. 석탑 앞에는 상석 하나를 놓았다. 아들딸에게 이승 떠나는 나와 아내를 땅에 묻지 말고 화장하라고 말했다. 우리 부부의 유골 가루를 우리가 즐겨 다니던 산길 들길 바닷길 모래밭길 차밭 고랑에 뿌리고 단 한 줌만 상징적으로 석탑 주위에 흘리듯 뿌리고 그 석탑을 우리 부부의 무덤 자리라 여기라고 했다. '어머니 아버지를 보고 싶고 추모하고 싶으면 꽃 한 송이를 석탑 앞의 상석 위에 놓고 석탑의 끝이 가리키는 짙푸른 하늘 한복판을 쳐다보기만 하라'고 말했다.

삼층 석탑은 열두 개의 날개가 있고, 보주(寶珠) 같은 꼭지 하나가 하늘로 향하고 있다. 그것은 나무의 우듬지처럼 하늘을 향해 상승하는 것이다. 하늘은 태허(太虛)라고도 불리는 자유로운 시공이고 그것은 우리 부부가 온 원초적인 시공이자 돌아갈 곳이다. 우리는 장차 그 탑의 날개를 타고 하늘로 날아갈 것이다.

나와 아내는 탑과 상석이 있는 공간을 우리 부부의 묘역으로 삼고, 그 공간에 꽃을 심어 가꾸곤 한다. 나비꽃도 심고, 꽃잔디도 심고 채송화와 국화도 심었다. 이러한 사연을 들은 한 후배 소설가는 칠 년 전 겨울에 나리꽃 알뿌리 둘을 가져다가 상석 앞에 묻어주었다. 그 알뿌리는 4월에 움을 밀어 올리고 헌걸차게 자라서 7월 중순이면 하얀 꽃과 붉은 꽃을 줄줄이 터뜨리곤 한다. 나리꽃 향기는 마당에 퍼지고 나는 그 향기를 한껏 들이켜며 어질어질 취하곤 한다.

아내와 나는 이제부터의 삶을 이별 연습하는 의식이라 생각하고 살기로 작정했다. 일 년에 먼 나라 여행이나 국내 여행을 한두 차례씩 반드시 하기, 여행할 때는 나란히 손을 잡고 다니기, 맛깔스러운 음식 먹으며 향기로운 와인 한두 잔씩을 마시기, 하루 한 차례씩 속보 운동하기, 살아 있는 한 무엇이든지 즐기면서 하기, 글도 즐기면서 쓰고, 스트레스 받는 일은 절대로 하지 말기, 서로를 위해주기.

며칠 전 한 친구한테서, 서울에 가서 위 한쪽을 들어냈는데 정원에 무성하게 자란 풀을 깎을 힘이 없어졌다는 편지가 인터넷으로 왔다. 한 해 전에는 전립선 수술을 했다는 친구였다. 그 소식이 충격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친구들이 하나둘 먼 나라로 떠나가곤 한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 나에게는 시간이 있다고 스스로에게 말하곤 한다. 시간이란 무엇인가. '과거' '현재' '미래'가 완벽하게 갖추고 있는 것을 시간이라고 말한다. 시간은 과거와 현재만 가지고 있고 미래를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을 파괴하여 소멸시키는 잔인한 것이다. 나는 나의 미래를 만들기 위하여 여력이 있는 한 분투하지 않으면 안 된다.

10월 중순에는 나의 장편소설책 한 권이 출간된다. 그것은 늘 "나에게는 시간이 있는가" 하고 나에게 자문한 결과이다. 그게 나의 마지막 책이 될지 모른다. 아니다, 나는 앞으로도 더 책을 써내게 될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우주와 소통하고 하늘의 별 같은 은밀한 가치를 발견한다는 것이고 그 결과물인 책을 낸다는 것은 내가 시간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나는 살아 있는 한 글을 쓰고 글을 쓰는 한 살아 있을 것이다.

우리 부부의 이별 연습하는 풍경은 이러하다. 캐나다의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러 가기 위해 가방 꾸려놓고, 비행기 이륙하고 착륙할 때 느끼곤 한 공포증을 떠올리며 나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내 컴퓨터 속에 들어 있는 미발표 장편소설 한 편과 시집 한 권 분량의 시들, 책상의 오른쪽 서랍 속에 들어 있는 예금통장 둘과 비밀번호와 몇 건의 계약서와 유언장 따위의 걸리적거리는 삶의 껍질에 대하여 털어놓는다. 그 여행 떠나기 하루 전날 아침 아내는 우리 부부 묘역의 잡풀을 매고 상석에 떨어진 나뭇잎과 시자(枾子)를 쓸고 반질반질하게 닦는다.


한승원 /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