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2015-10-01
추석에 꿀을 선물로 받았다. 직접 양봉을 한 진짜(?) 꿀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만 배달 과정에서 꿀단지의 뚜껑이 깨져 꿀이 반은 쏟아진 채 도착했다. 내가 없는 사이에 그것을 전달받은 남편이 꿀 범벅이 된 단지를 수습하느라 엄청 고생했다며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여기저기에 묻고 바닥에 떨어져 끈적거리고 하는 통에 곤혹스러웠던 모양이다.
“아하, 그래서 꿀단지 위하듯 위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 게 아닐까?”
엉뚱한 나의 반응에 남편은 멀뚱히 나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말해놓고 보니 그럴듯했다. 꿀이 아주 귀한 것이라서 위하기도 했겠지만 단지가 깨지면 사방 군데가 다 끈적거려 주체할 수가 없으니까 벌벌 한 것이 아닐까, 즉 꿀단지가 애물단지가 될까 봐 그런 게 아닌가 하는 나의 즉흥적인 해석에 “정말로 그런 뜻이 있는 거였어?”라며 남편은 순순히 동의한다. 꿀 치우느라고 진짜 고생한 모양이다.
추석 이튿날 서울 시내는 모처럼 한가했다. 한강대교를 지나 광화문까지 길이 뻥 뚫려 시원스러웠다. 그 많던 도심의 자동차들이 명절을 맞이하여 고향으로 가버린 덕분이다. 서울 시내의 그 많던 자동차들을 일시에 사라지게 한 위대한 힘은 ‘가족’이다. 부모 형제가 만나 모두 다 훈훈하고 행복했는지는 가정마다 사연이 다르겠지만 일단 교통정체를 뚫고 기어이 고향으로 떠나게 만드는 가족이란 이름은 꿀보다 더 끈적거리는 그 무엇이다.
예전에 어른들은 ‘자식은 애물단지’라는 말씀을 하셨다. 자식을 키우려면 애를 쓰니까 애물단지라고 하나 보다라고 막연히 짐작했는데 ‘어린 자식이 죽으면 단지에 넣고 묻어서’ 애물단지라는 말이 생겼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꿀단지처럼 위해서 키우지만 부모에게 자식은 항상 애틋하고 행여 깨질세라 걱정거리이므로 애물단지인 것이다. 더구나 곁에 있지 않고 멀리 도시로 나가 살고 있는 자식은 오매불망 애물단지일 것이다.
그 애물단지들이 부모 품으로 모여드는 명절. 어찌 되었건 명절이라고 찾아든 자식들과 꿀맛 같은 시간을 보냈을 부모는 또한 자식들이 돌아갈 먼 길을 염려하여 일찍 떠나라고 재촉했는지 서울의 한가로움은 삼일천하로 끝나고 다시 북새통이다. 추석을 지내면서 꿀단지이거나 애물단지이거나 아무쪼록 도시에서 깨지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남아 명절이면 고향으로 찾아오는 것, 그것이 부모에게는 가장 큰 효도라는 생각을 해본다.
윤세영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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