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고전·고미술

[황종택의新온고지신] 노하천고추기청(露下天高秋氣淸)

바람아님 2015. 10. 10. 23:58
세계일보 2015-10-7

공기가 점점 차가워지고, 찬이슬이 맺히고 있다. 절기상 한로(寒露)이니 그럴 수밖에! 한로는 추분을 지나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 사이에 들어 있다. 한로가 지나면 가을 국화꽃 향기 더욱 짙어진다. 곳곳에서 국화 전시회가 열리고, 국화 술을 담그며, 재래시장에는 국화잎이 새겨진 하얀 국화떡 굽는 고소한 냄새가 정겹다.

국화는 그 둥근 모양과 밝은 색이 태양을 상징하며 양(陽)의 숫자 중 가장 큰 수인 9가 겹치는 시기 곧 중양절(重陽節) 때 피어나기에 양기가 센 의미를 여기서 찾는 듯하다. 이 무렵 뒷동산에 올라 산수유 열매를 머리에 꽂으면 잡귀를 쫓을 수 있다는 속설도 있다. 산수유 열매가 자줏빛으로 붉은색이 귀신 쫓는 힘을 갖고 있다고 믿는 벽사(壁邪)신앙이다.


 

두보의 시 ‘9일 남전의 최씨 별장에서(九日藍田崔氏莊)’는 그 모습을 이렇게 표현했다. “내년 이 모임에 누가 건재할지 아는가. 얼근히 취한 눈으로 산수유를 들고 자세히 들여다보네.(明年此會誰知健 醉把茱萸仔細看)”

 

가을이 깊어가는 데 따른 애상을 노래한 두보의 또 다른 시 ‘가을밤(秋夜)’을 음미해 보자. “찬이슬 높은 하늘 가을이 맑고, 홀로 밤을 새니 가슴이 설렌다(露下天高秋氣淸 空山獨夜旅魂驚)/…/ 병든 이 몸으로 남쪽 국화 다시 보니, 북녘 가족소식 없어 기러기도 무심코나(南菊再逢人臥病 北書不至雁無情)”


한로 즈음 농촌은 바쁜 시기이다. 벼이삭과 수숫대, 콩잎 등이 바람결에 서걱거리고, 온갖 과일이 농익어 수확할 때여서 일손이 모자란다. 기온이 더 내려가기 전에 추수를 끝내야 하기에 농부들은 새벽밥 해먹고 들에 나가 밤늦도록 일을 한다. “한들한들 실바람, 햇빛이 뉘엇뉘엇 가을이 오네. 금빛 수레 타고 휘파람 불며, 산 넘고 강 건너∼.” 서민들이 즐기는 시절 음식으론 추어탕(鰍魚湯)을 꼽을 수 있다. ‘본초강목’에는 미꾸라지가 양기를 돋운다고 했던가.


황종택 녹명문화연구소장

露下天高秋氣淸: ‘찬이슬 내리는 높고 맑은 하늘의 가을’이라는 뜻.

露 이슬 로, 下 아래 하, 天 하늘 천, 高 높을 고, 秋 가을 추, 氣 기운 기, 淸 맑을 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