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주 '바위옷 중에서'
일정(日政)의 식민지 조선반도에 생겨나서,/ 기생이 되어서, 남의 셋째 첩 쯤 되어서,/ 목매달아서 그 모가지의 노래를 하늘에 담아 버린/ 이십세기의 우리 여자 국창(國唱) 이화중선./ 안개 짙은 겨울날 바위옷 푸르른 걸/ 보고 있으면/ 거기 문득 그네의 노래 소리 들린다. (.......)
서정주 '바위옷 중에서'

■ '바위옷'이란 바위에 낀 푸른 이끼를 말한다. 미당은 잿빛 겨울에 그 푸른 것을 바라보면서 이 시를 읊조렸다. 이화중선(李花中仙, 1898-1943)을 생각하면서. 부산의 뜨내기 여인은, 남원에서 한약재를 파는 이씨 사내와 하룻밤을 잤다. 여인의 배는 불러왔고 혼자서 낳은 딸, 그 이름을 짓지 못하여 그냥 이년이라 불렀다. 어느날 이씨는 부산의 이년을 들쳐업고 남원으로 왔다. 이년이는 권번에 입적을 한다. 이름도 해당화와 수선화를 의미하는 화중선(花中仙, 꽃 중의 신선)으로 바꿨다. 신이 내린 목소리에 타고난 끼에 그녀는 단박에 유명해진다. 특히 심청가의 '추월만정(가을 달빛이 뜨락에 가득하니)'과 춘향가의 '사랑가'는 그녀를 따를 자가 없었다. 그녀는 1943년 재일교포 위문 공연을 하고 일본에서 건너오다가 풍랑을 만나서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하늘 아래서 제일로 서러웠던 그 노래 소리를, 늦은 가을밤 하염없이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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