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 2014-08-01
장 앙투안 와토, ‘시테라 섬의 순례’(부분), 1717년
서양미술 속에서 부채는 특별히 로코코 시대에 그 모습을 자주 드러낸다. 로코코 패션의 완성은 하이힐, 숄, 부채, 퐁탕주(가체), 모자, 액세서리 등이다. 이처럼 패션이 파편화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에로티시즘이 정교화되었다는 의미다. 로코코는 뭐니 뭐니 해도 유혹과 연애의 시대가 아닌가! 특히 부채는 사교계와 시민계급의 여자들 모두에게 중요한 장신구였다. 부채를 솜씨 있게 다루는 것만으로도 교태에 도움이 되었다. 부채를 손에 쥐면 아름다운 손, 연약한 손목, 화사한 몸짓, 잘 다듬어진 몸매 등이 눈에 쉽게 띄었다. ‘부채언어’라는 용어까지 생겨났을 정도로, 타인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남자와 매우 친밀한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상징적 도구가 되었다. 이를테면 여자가 부채를 완만하게 기울이면 “날 잡아잡숴”의 의미, 또 부채를 의기양양하게 펴면 “당신 따위에겐 절대 잡아먹히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이뿐만 아니라 여자들은 부채언어를 통해 그 남자가 초대에 응했는지의 여부는 물론 방문시간이 몇 시인지까지 소통할 수 있었다. 이렇듯 여자들은 부채를 통해 사랑, 애정, 절망, 분노 따위의 모든 감정을 표현할 수 있었다.
여기 로코코 시대의 대표 화가 장 앙투안 와토의 ‘시테라 섬의 순례’를 보라. 이 시대의 그림은 남녀가 희롱하며 노는 그림이 대세다. 바로 ‘페트 갈랑트(fetes galantes)’ 즉 ‘우아한 축제’ 또는 ‘사랑의 연회’라는 장르다. 화면 속 부채 든 여자는 세 여자 중 아직 유혹되지 않았다. 아마 그녀가 가장 남자의 애간장을 녹이지 않았나 싶다. 부채를 들고 있는 품새가 그렇다.
유경희 |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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