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아트칼럼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146] 타인의 고통 즐기는 '평범한' 사람들

바람아님 2015. 11. 21. 06:22

(출처-조선일보 2015.11.21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1974년 나폴리의 '스튜디오 모라'에서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c·1946년생)의 퍼포먼스가 시작됐다. 
작가는 테이블 위에 일흔두 개의 서로 다른 물건을 차려두고, 
관객에게 아무거나 골라 작가의 몸에 무엇이든 해도 좋다고 했다. 
깃털, 장미꽃, 꿀, 사과부터 채찍과 가위, 그리고 탄환이 장전된 총까지 물건들은 다양했고, 
퍼포먼스는 여섯 시간 동안 지속됐다.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결론은 그녀가 살아남은 게 기적 같았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리듬 0, 퍼포먼스, 1974년, 나폴리의‘스튜디오 모라’에서.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리듬 0, 퍼포먼스, 1974년, 나폴리의‘스튜디오 모라’에서.
관객들은 특이할 것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고, 처음에는 모두가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작가가 저항하지 않고, 무엇이든 용인되는 이 상황에서 사람들은 변해갔다. 
그들은 젊은 여성인 작가의 옷을 찢었고, 목에 칼을 들이댔으며, 장미 가시를 피부에 찔러 넣고, 심지어 총을 겨누기도 했다. 
마침내 예정된 시간이 지나고, 만신창이가 된 작가가 몸을 움직여 관객을 향해 걸음을 떼자 그들은 황급히 달아났다. 
잠시 동안 '예술'이라는 명분으로 허락됐던 행위가 사실은 어떤 상황에서도 용인될 수 없는 폭력과 만행이라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던 것이다.

퍼포먼스 아트의 대모라고 불리는 아브라모비치는 유고슬라비아 출신이다. 내전과  전쟁으로 지금은 사라진 나라다. 
그녀의 양친은 모두 군인이었고, 그 성장 과정은 매일이 군부대의 훈련소 같았다고 회고한다. 
그래서인지 작가는 지속적으로 죽음 직전까지의 한계 상황으로 자기의 육체와 정신을 몰아넣고 변화하는 자신을 성찰해 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더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은 타인의 고통을 거리낌 없이 즐기는 평범한 사람의 밑바닥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