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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민족의 인종차별

바람아님 2015. 12. 2. 01:42

[J플러스] 입력 2015.11.28 



“한국에는 인종차별이 없습니다. “
1999년 미국에 유학을 가 대학원 첫수업에서 토론 중 내가 받았던 질문은 한국에 인종차별이 없는가 하는 것이었다. 부끄럽게도, 그 주제에 관하여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나는 그렇게 대답을 해놓고는 뒤이어 그 답이 얼마나 잘못된 답이었는지가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그 때 나의 대답은 우리 나라가 소위 단일민족으로 구성되었음을 어릴 때부터 자랑처럼 배웠던 탓에 나왔던 것 같다. 우리 땅의 수많은 외국인들은 아예 생각하지 않으면서, 단일민족 사회는 구성원이 모두 같은 민족인데 어찌 생물학적 차이를 이유삼아 구성원끼리 차별하겠는가 하는 단순한 생각만 했던 것이다. 나는 그 날, 내가 인종차별이라는 주제에 대해 무지했었고, 우리 사회가 인종 차별을 논의하지 않음을 마치 문제 자체가 없는 것으로 착각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 후로 다인종 다민족이 함께 사는 미국에서 사는 동안 인종과 민족에 관해 더 생각하는 한편, 다름을 대하는 인간의 본성에 관해서도 곰곰 생각하게 된 것은 나 자신 그 곳의 이방인이었고, 소수 민족에 속했으며, 때로는 차별을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인간은 모두가 ‘다름’을 두려워한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종종 여러가지 모습으로 표현되는데,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외면과 무관심이다. 미국에서 자녀의 학교 PTA(학부모회)에 출석했던 한인 어머니가 “미국 엄마들, 내가 생긴게 달라서인지, 아니면 다른 나라에서 와서인지 말도 잘 안걸더라구요”라고 푸념을 한 적이 있다. 처음에는 어색해서 그러려니 했는데 계속 참석해도 같은 분위기가 연속되자 그 어머니는 커져가는 소외감 속에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나는 그 때, 서울의 학교에서 학부모회가 열리고 그 자리에 외국인 엄마나 아빠가 참석하면 과연 우리 부모들이 얼마나 따뜻하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까를 상상해 보았다.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수가 점점 늘어나 180만명에 육박했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외국인 노동 인력이 유입되고, 국제 결혼과 유학생 수의 증가를 사회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으며, 그들과 함께 사는 세상을 이제는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이대로 가면 머지 않아 단일 민족임을 강조할 수 없고, 구성원들이 어떻게 하면 다양성에 기초한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는 일은 이미 여러 분야에서 시작되었다.


외면이나 무관심은 적극적으로 부당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겨져서 자주 그 문제의 심각함을 잊게 만든다. 그러나 외면과 무관심은 항상 또다른 문제를 만든다. 나의 자녀가 유학을 가 국적과 피부빛깔때문에 따돌림당하는 것이 부당하다면, 오늘 내 아이 주위의 외국인과 이주민 자녀들도 따돌림을 당해서는 안된다. 서투른 현지어 능력때문에 일상에서 부당한 일을 경험하는 해외 교포들의 이야기에 가슴이 아프다면 , 이 땅의 외국인과 이주민이 우리말을 우리처럼 못한다고 해서 멸시해서도 안된다. 아직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고 해서, 그들이 우리 식으로 사는 것에 서투르다 해서 그들을 업신여겨서는 안된다. 그들이 진정으로 살기 좋은 곳이라 느끼지 않으면, 이 나라의 편협성과 우리들의 정의롭지 못함은 부메랑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