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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돋보기] 왜 '제국의 위안부'인가

바람아님 2015. 12. 2. 07:20

(출처-조선일보 2015.12.02 어수웅 문화부 차장)


어수웅 문화부 차장 사진노벨문학상까지 거론되는 이창래 프린스턴대 교수의 대표작 중 하나가 장편소설 '척 하는 삶'(1999)이다. 
세 살 때 부모 따라 미국 간 1.5세 작가가 일본군위안부의 참상(慘狀)을 뒤늦게 알고 충격받아 쓴 작품인데,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다. 
2년 동안 꼬박 쓴 500쪽 분량을 버리고 처음부터 새로 썼다는 점이다. 
최초 버전의 주인공은 위안부로 끌려갔다가 일제 패망 후 돌아온 한국 여성, 두 번째 버전 주인공은 
그 만행을 옆에서 지켜본 한국계 일본인 군의관이었다.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의 관점이라는 게 차이였다.

이 작품을 떠올린 이유는 세종대 박유하(58) 교수와 그의 학술 연구서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논란 때문이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우리 검찰은 박 교수를 기소했고, 
일본 친한파 인사들이 기소에 대한 항의 성명을 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성명 중 특히 인상적인 내용이 있었다. 
'이 책으로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가 훼손되었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우며, 오히려 위안부 할머니들이 경험한 슬픔의 깊이와 
복잡함이 한국인뿐만 아니라 일본의 독자들에게도 전해졌다고 느끼는 바입니다.' 
성명 참여자 54명 중에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죄한 '고노 담화'의 
주인공 고노 전 관방장관,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사죄한 무라야마 총리가 있다.

사실 박 교수를 친일파로 비난하는 일은 쉽고 또 통쾌하다. 
우리가 남인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엉뚱한 소리 하는 사람을 어찌 옹호하나.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보자. 우리끼리는 시원하고 유쾌한데, 다른 나라에는 어떻게 비칠까. 
학문 연구에 대해 국가가 나서 처벌하겠다는 나라, 표현 자유를 법으로 막겠다는 나라를 국제사회가 과연 엄지손가락 
들어 올리며 인정해줄 것인가.

오독과 오해의 소지가 있는 몇몇 구절과는 별도로 '제국의 위안부'를 읽고 나면 박 교수 주장의 핵심이 
새로운 담론적 중간 지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차피 아베 총리로 대표되는 위안부 부정론자, 부인론자는 무슨 소리를 해도 소 귀에 경 읽기다. 
설득해야 할 사람은 양심적 일본인이고, 당사자인 우리와 일본을 넘어 전 세계 시민인 것이다.

우리는 전후(戰後) 일본과 독일을 종종 비교한다. 
진심으로 사과한 독일과 달리 일본은 그러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피해 당사자인 한민족과 유대인의 차이는 어떨까. 
우리는 과연 유대인처럼 치밀하고 현명한 전략을 구사했을까.

영화 '쉰들러 리스트'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감독인 스티븐 스필버그가 유대  계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고, 
쉰들러의 선행은 기억하지만 그 쉰들러가 처음에는 독일인 기회주의자였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가해자의 인격에만 의존하는 건 순진한 일. 
참고로 주인공을 바꿔 다시 쓴 이창래의 '척 하는 삶'은 아니스필드-볼프 등 4개 문학상을 받으며 
미국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환기(喚起)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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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내 관련 글 : 제국의 위안부’ 저자 박유하 검찰 기소에…日인사들 항의성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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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 日 법원이 사린가스 운반책을 석방한 이유

(출처-조선일보 2015.12.02 김수혜 도쿄 특파원)

김수혜 도쿄 특파원 사진일본 검찰이 못 참고 항고할까, 꾹 참고 받아들일까. 

지난주 일본 법원이 무죄방면한 기쿠치 나오코(菊地直子·44)라는 여자를 놓고 일본 열도가 시끄럽다.

1995년 3월 20일 아침, 옴진리교라는 사이비종교 신도들이 도쿄 시내 지하철에 '사린 가스'라는 

치명적인 신경가스를 살포했다. 13명이 죽고 6300여 명이 다쳤다. 

그해 마흔 살 된 교주 아사하라 쇼코(麻原彰晃·60)가 시킨 일이었다. 경찰이 수사망을 좁혀갔다. 

옴진리교가 교주 체포를 저지할 목적으로 도쿄도지사 사무실에 폭발물 소포를 보냈다. 

도청 직원이 그걸 뜯다가 폭탄이 터져 열 손가락 중 여섯 개가 날아갔다. 

사린가스 살포 사건 두 달 뒤인 5월 16일의 일이었다.

경찰이 야마나시(山梨)현 본거지에서 도쿄 시내 아지트까지 사린가스와 폭탄 원료를 운반한 용의자를 공개했다. 

1억3000만 일본인이 충격받았다. 긴 생머리의 청순한 여자가 웃고 있었다. 그해 24세의 기쿠치였다. 

교육열이 강한 중산층 가정에서 경쟁률 센 학교만 골라 다니며 자랐다고 일본 언론이 보도했다.

이후 17년간 숨어 살던 기쿠치가 2012년 체포됐다. 일본 열도가 다시 한 번 숨을 삼켰다. 

지명수배 전단의 청순한 테러범은 온데간데없었다. 양볼이 움푹 꺼진 중년 여자가 카메라를 보고 있었다. 

법원은 우선 기쿠치를 숨겨준 동거남에게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기쿠치의 죄를 묻는 작업은 좀 더 오래 걸렸다.

핵심은 기쿠치가 '알았느냐, 몰랐느냐'였다. 

자기가 운반하는 물건이 사람을 죽이는 물건인 줄 뻔히 알았다면 살인에 동참한 인간이다. 

반대로 자기가 뭘 나르는 줄도 모르면서 그저 시키는 대로 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기쿠치는 몰랐다고 버텼다. 

검찰은 안 믿었다. 그때 검찰 편에 선 증인이 있었다. 

아사하라 교주와 함께 사형선고를 받은 옴진리교 간부 이노우에 요시히로(井上嘉浩)였다.

이노우에가 "기쿠치는 다 알고 있었다"고 했다. 그 말에 힘입어 작년 6월 1심에서 유죄 판결이 났다. 

법조계 전문가들이 TV에 나와서 "이노우에의 증언이 핵심 역할을 했다" 

"사형수가 거짓말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그게 2심에서 뒤집혔다. 

지난 27일 도쿄 고법 오시마 다시아키(大島隆明) 재판장이 기쿠치에게 무죄 판결을 내린 것이다. 

이유가 뭘까.

"시간이 흐르면 기억이 흐려지는데, 이노우에의 증언이 부자연스럽게 구체적이다. 

사형수의 증언이라고 무조건 믿기엔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남는다."

요컨대 기쿠치가 무죄라는 증거가 있어서 풀어주는 게 아니라, 유죄라는 증거가 없어서 방면한단 얘기였다. 

그러면서도 오시마 재판장은 기쿠치를 향해 "당신이 운반한 약품으로 중대한 범죄가 일어났다. 그 점을 알라"고 

엄하게 다짐했다.

이 판결이 과연 합당한지 부당한지는 일본 사회 안에서도 갑론을박이 오가고 있다. 

그러나 '유죄라는 증거가 없는 한 무죄로 추 정한다'는 원칙 자체에 토를 다는 사람은 없다. 

그 원칙이 무너진 세계는 어쩌면 옴진리교가 창궐하는 세계보다 더 무서운 세계일지 모른다.


기쿠치는 그날 밤 일본 언론에 "내가 옮긴 약품으로 만든 폭탄으로 아무 잘못 없는 분에게 피해를 줬다. 

재판장의 말씀을 무겁게 받아들이려 한다"는 사죄문을 냈다. 

검찰이 항고할지가 일본 대중과 미디어의 다음 관심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