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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테토의 비정상의 눈] 살아 숨 쉬기에 매력적인 북촌

바람아님 2015. 12. 4. 00:25

[중앙일보] 입력 2015.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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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테토
JTBC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출연자


서울을 방문한 외국인 친구들의 사진을 보면 남산타워, 경복궁, 광화문의 세종대왕 동상 등이 빠지지 않는다. 또 하나 빼먹을 수 없는 곳이 바로 북촌 한옥마을의 유명한 언덕길이다. 전통 한옥이 줄지어 서 있는 아름다운 거리다. 오래전 양반 거주지의 역사와 건축물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친구들이 찍은 사진 속의 북촌은 박물관처럼 느껴질 뿐이다. 북촌의 진정한 매력을 담지 못하기 때문이다. 살아 숨 쉬는 동네의 아름다움 말이다.

 몇 달 전, 아예 북촌으로 이사한 덕분에 이 동네를 제대로 경험하고 있다. 북촌은 가족·어린이·할머니들의 동네다. 매일 수천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데도, 아침 첫 햇살이 나무로 된 한옥을 주홍으로 물들이고 격자 너머로 따스한 그림자를 드리우는 초겨울 북촌의 아침은 놀라우리만큼 고요하다. 그런 아침에 집을 나설 때면 차가운 겨울 공기 속으로 나의 입김이 하얗게 퍼진다. 골목길을 내려가다 보면 이웃집 창틈으로 맛있는 된장찌개 냄새가 솔솔 퍼져 나오고 가족의 하루를 준비하는 접시와 냄비의 달그락거리는 소리도 흘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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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네 길을 더 내려오면 대문 앞에 연세 높으신 할머니 한 분이 앉아 계신다. 더 아래쪽에는 어린 세 아이를 등교시키는 엄마가 보인다. 똑같은 배낭을 메고 있는 세 아이는 엄마와 함께 노래 부르기도 하고, 길가 열매를 따서 언덕길에 던지기도 하면서 신나게 등교한다. 거의 매일 마주치는 이웃들이다. 그런 다음 동네 카페 두루를 지나간다. 이젠 아는 사이가 된 사장님은 “마크! 잘 다녀와요!”라고 외친다. 저녁 퇴근길에는 내가 “사장님!” 하고 부른다. 그러면 “오 마크! 퇴근해요?”라며 반갑게 맞아준다. 이웃 모두의 이름을 알고 있는 사장님은 나를 다른 이웃들에게 소개시켜 주기도 한다. “이분은 여기 20년 넘게 사셨어요. 여기서 자랐죠. 집까지 함께 걸어가지 그래요?”라면서.

 집으로 향하는 퇴근길, 어둑해진 언덕을 오르다 보면 도둑고양이들이 슬그머니 나타나 관광객들이 떠난 빈자리를 채운다. 고양이들은 달빛 아래 기와지붕 위를 마음대로 걸어 다니기도 한다. 한 할머니가 대문 앞에서 관광객들이 버린 쓰레기를 조용히 줍는다. 나 역시 우리 집 대문을 열며 같은 행동을 한다. 우리는 이 동네를 사랑한다. 우리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풍부한 문화유산으로 가득한 이곳을 관광객들과 기쁜 마음으로 나누고 싶다. 하지만 이곳이 사람 사는 냄새가 사라진 박물관이 되는 일은 절대 없었으면 한다.

마크 테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