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입력 2015.12.03
몇 달 전, 아예 북촌으로 이사한 덕분에 이 동네를 제대로 경험하고 있다. 북촌은 가족·어린이·할머니들의 동네다. 매일 수천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데도, 아침 첫 햇살이 나무로 된 한옥을 주홍으로 물들이고 격자 너머로 따스한 그림자를 드리우는 초겨울 북촌의 아침은 놀라우리만큼 고요하다. 그런 아침에 집을 나설 때면 차가운 겨울 공기 속으로 나의 입김이 하얗게 퍼진다. 골목길을 내려가다 보면 이웃집 창틈으로 맛있는 된장찌개 냄새가 솔솔 퍼져 나오고 가족의 하루를 준비하는 접시와 냄비의 달그락거리는 소리도 흘러나온다.
집으로 향하는 퇴근길, 어둑해진 언덕을 오르다 보면 도둑고양이들이 슬그머니 나타나 관광객들이 떠난 빈자리를 채운다. 고양이들은 달빛 아래 기와지붕 위를 마음대로 걸어 다니기도 한다. 한 할머니가 대문 앞에서 관광객들이 버린 쓰레기를 조용히 줍는다. 나 역시 우리 집 대문을 열며 같은 행동을 한다. 우리는 이 동네를 사랑한다. 우리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풍부한 문화유산으로 가득한 이곳을 관광객들과 기쁜 마음으로 나누고 싶다. 하지만 이곳이 사람 사는 냄새가 사라진 박물관이 되는 일은 절대 없었으면 한다.
마크 테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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