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도 우습게 아는데 국민들이 안중에 들어올 리 없다. 그러지 않고서야 예산을 나눠먹고, 법안을 끼워 넣는 것으로도 모자라 연관성이 전혀 없는 법안을 바꿔먹기할 수는 없다. 국회선진화법으로 정치권의 오랜 적폐 중 하나인 몸싸움은 사라졌지만 밀실에서의 거래와 흥정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났다. 예산안은 예산안대로, 법안은 법안대로 심사해야 심도 있는 논의가 될 텐데 예산안과 법안이 뒤죽박죽 얽히고설켜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게 없는 기형아를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협상은 처음부터 끝까지 극소수 여야 지도부가 주도했다. 절대다수 의원들은 소외됐고 들러리, 거수기 역할로 전락했다. ‘불법에 가담할 수 없다’는 국회 법사위원장의 저항은 달걀로 바위치기였다. 국회 상임위 심의는 철저히 무시됐고 밀실 거래와 흥정이 공론의 절차를 대체한 후진적인 한국 정치의 민낯이다. 이런 식으로 새누리당은 박근혜 대통령의 관심이 큰 국제의료사업지원법 관광진흥법을, 새정치연합은 모자보건법 전공의보호법 대리점거래공정화법을 챙기는 거래를 성사시켰다.
양당의 텃밭인 대구·경북과 호남 예산 퍼주기는 ‘쿵짝’이 아주 잘 맞았다. 양당은 SOC 건설 등 대구·경북과 호남 지역예산을 각각 5600억원, 1200억원 증액했다고 한다. 최적배분을 최우선해야 하는 예산 편성의 기본 원칙은 온데간데없이 양당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지역이기주의가 판을 친 결과다. 대한민국에 대구·경북과 호남만 있는 게 아니다.
여야는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이번 정기국회 회기 내에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원샷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테러방지법, 북한인권법,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 사회적경제기본법 등 6개 법안을 합의 처리키로 했다. 이 중 원샷법 등 4개 법안은 새누리당이, 대중소기업상생법과 사회적경제기본법은 야당이 처리를 주장하고 있어 이 역시 바꿔먹기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남은 것은 노동개혁 5개 법안이다. 여야는 합의문구를 놓고 갑론을박할 시간이 없다. 그 시간에 노사정 대타협 정신을 계승할 단일안을 마련하는데 매진해야 마땅하다. 내년 총선일정을 감안할 때 올해를 넘기면 노동개혁 입법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노동개혁 입법, 19대 국회가 그나마 만회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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