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12.08 팀 알퍼·칼럼니스트 김도원 화백)
한국의 TV프로그램 중 가장 즐겨 보는 건 홈쇼핑 방송이다.
그걸 보며 물건을 사본 적은 없지만, 아무튼 즐겨 보는 건 사실이다.
홈쇼핑 방송의 가장 큰 장점은 물건을 안 사더라도 충분히 즐겁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홈쇼핑에서 파는 물건을 구경하려고 보는 게 아니다. 홈쇼핑에서 많이 파는 보험 상품이나 다용도
홈쇼핑에서 파는 물건을 구경하려고 보는 게 아니다. 홈쇼핑에서 많이 파는 보험 상품이나 다용도
주방기구 같은 건 아무리 봐도 사고 싶은 마음이 들진 않는다. 나 같은 외국인도 홈쇼핑 방송을 보는 건
'쇼호스트(홈쇼핑 방송 진행자)' 때문이다.
쇼호스트라는 (약간 어색한) 영어 이름부터 흥미를 끈다.
쇼호스트라는 (약간 어색한) 영어 이름부터 흥미를 끈다.
사실 홈쇼핑 방송 진행자를 영어로 옮기면 'Home shopping presenter(홈쇼핑 프레젠터)'라고 하는 게 맞는다.
하지만 그런 지루한 이름보단 쇼호스트란 명칭이 훨씬 매력적으로 들린다.
게다가 영국의 홈쇼핑 프레젠터들은 그 이름만큼이나 지루하게 방송을 진행한다.
나 같으면 거기서 파는 물건을 공짜로 준대도 영국 홈쇼핑 방송을 보진 않을 것이다.
한국의 쇼호스트는 영어권 사람들에겐 마치 쇼나 서커스 진행자와 비슷한 직업으로 들린다.
뭔가 흥분으로 가득하면서도 이국적인 매력까지 갖춘 일을 하는 사람 같다.
게다가 쇼호스트들은 그 이름이 주는 감흥 이상으로 재밌는 일을 한다.
그들은 도대체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알 수 없는 상품을 팔 때도 주눅 드는 법이 없다.
그들의 눈과 목소리엔 '이 제품은 정말로 당신에게 필요한 물건이다'라는 확신이 가득하다.
지난주에 한 홈쇼핑 방송에서 립스틱을 파는 쇼호스트를 봤다.
그녀는 그 립스틱을 직접 발라보더니 연신 웃으면서 이렇게 외쳤다.
"이걸 바르니 한 5년, 아니 10년은 젊어 보여요." 내 눈에는 립스틱 색깔이 별다를 것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확신에 찬 목소리를 계속 듣고 있으니 정말 그런 것 같단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하마터면 그 물건을 살 뻔했다.
한국에 홈쇼핑 채널이 그렇게 성업 중인 것도 바로 이런 유능한 쇼호스트들 덕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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