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人文,社會

오은경의 잊혀진 유라시아 이야기(10)-① '김태희가 밭을 간다'는 우즈베크의 여성이 유난히 예쁜 이유?

바람아님 2015. 12. 14. 14:29

(출처-조선일보 2015.07.17 오은경 동덕여자대학교 교수)


한국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시대를 맞이하여 유라시아 투르크(Turk)국가들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왠지 유라시아 대륙은 미지의 땅이자 미개척지인 것처럼 들리고 있다. 
적어도 한국인들에게만큼은 그렇게 심리적 거리가 멀게 여겨지는 것 같다.

미국의 시인 에드거 앨런 포의 처녀작으로 《테머레인과 기타 시(Tamerlane and Other poems)》(1827)가 있다. 
‘테머레인’은 투르크 족의 정복자 “절름발이 티무르”를 영어식으로 옮긴 말이다. 
투르크족은 몽골족과 더불어 지난 3000년 동안 48번이나 세계적 제국을 건설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국의 건설’은 세계화의 고전적 방식이다. 
물론 48번의 제국을 세운 정복자 중 동서양을 통틀어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은 칭기즈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서방세계에서는 “절름발이 티무르” 테머레인의 이야기가 오래전부터 연극무대에 올려지거나 문학 작품화되어 
있을 정도로 대중성을 띠고 있다. 
그들에게 정복자 “절름발이 티무르”는 다양한 스토리텔링의 소재를 제공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극작가 니콜라스 로우는 희곡《테머레인》(1702)을 썼고, 헨델은 그 희곡을 바탕으로 오페라 《타메르라노
(Tamerlano)》를 작곡했다. 
결과적으로 티무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잘 알려진 “세계화된” 인물이다.

티무르 동상. /조선일보 DB티무르 동상. /조선일보 DB

20세기 서방세계에서 칭기즈칸이 조명받았던 것은 냉전시절 
구소련에 대한 심리전의 일환이었다고 볼 수 있다. 
칭기즈칸이 280년간 러시아를 정복했던 “악몽”을 상기시키고자 
하는 정치적 의도가 깔렸었던 것이다. 반면 몽골을 비롯한 
구소련권에서는 소련이 해체되기 전까지 칭기즈칸은 그저 부랑배 
정도로만 알려졌을 뿐이었다.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칭기즈칸이 
몽골에서 복권된 것은 불과 25년 전의 일이다.

방대한 티무르 제국을 건설했던 정복자 “절름발이 티무르”는 
지금의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났다. 그의 출생에 대해서는 
가축도둑 출신이라는 설, 투르크족이라는 설, 몽골족이라는 설 등 
다양하지만 정확한 내용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어찌 되었든 그는 거시적 안목, 야망, 통찰력 그리고 용맹함을 
무기로 곧 부족의 족장이 된다.

그러자 티무르는 소수의 군대로 차가타이 한국을 전복시키고 세계를 
정복할 꿈을 꾼다. 그는 정복자의 정통성을 과시하기 위해 
칭기즈칸의 혈통이 흐르는 죽은 적장의 아내 비비한음을 자신의 
본부인으로 맞이한다. 티무르는 비비한음을 끔찍이 사랑했기 
때문에 잔혹한 정복자와 사랑이라는 낭만적 테마가 자주 문학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티무르는 지금의 사마르칸트를 거점으로 당시 러시아를 통치하고 있던 
황금한국을 멸망시키고, 페르시아와 메소포타미아를 점령했고, 
러시아, 조지아, 인도, 시리아, 터키까지 침공한다. 
우리의 고려여인들이 몽골로 끌려갔듯이, 
수천 명의 여인이 티무르의 포로로 잡혀오기도 했다.

패전의 가장 큰 희생자는 역시 여성이다. 
우즈베키스탄 여성들이 유난히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이유에 부분적으로는 정복의 역사도 한몫을 담당하였다. 
정복지에서 데려온 가장 아름다운 여성들은 우즈베크 여성들에게 당연히 우월한 유전자를 물려주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