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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경의 잊혀진 유라시아 이야기(9) 한국전쟁서 싸웠던 '아나톨리아의 사자들' 누구?

바람아님 2015. 12. 13. 10:40

(출처-조선일보 2015.07.09 오은경 동덕여자대학교 교수)


분단국가의 상황, 그리고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그 어떤 나라보다 안보의식이 높아야 할 한국이지만 
안보를 강조하는 것은 군인이나 공무원 등 극히 일부 계층에 국한된 용어처럼 들린다. 
심지어 이 사회의 보수파를 지칭하는 아이콘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정파를 초월하여 안보만큼은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성역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역사적으로 유라시아나 유럽의 제국에서도 왕 또는 귀족이 되는 것은 국가안보를 위해서 얼마나 현실적인 기여했는지 
그 공적이 고려되는 경우가 많았다. 한마디로 국가를 위해 영토를 얼마나 확장했는지 아니면 국가를 위해 어떻게 몸을 
바쳤는지가 중요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우리보다 영웅이 많았다.

우리에게도 영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정치적 상황 때문에 영웅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뿐이다. 
비근한 예가 2010년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사건이다. 북한의 기습적 포격으로 평화로운 연평도가 시커먼 불바다가 되는 
장면을 모든 국민이 생중계되는 TV로 목격했다. 이러한 기습으로 허를 찔린 우리 군대가 허둥댔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의 해병용사들은 북한군이 쏘아대는 포탄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불구덩이 속에서 철모에 불이 붙었는데도 자주포로 꿋꿋하게 대응했다. 왜 그런지 두려움을 모르는 우리 젊은이들의 
영웅적 대응에 대해 언론에서는 커다랗게 조명하지 않았다. 
그들이야말로 조국을 위해 자신의 몸을 불살랐던 우리의 영웅들이 아닌가.

우리에게는 까마득히 잊혀가고 있는 또 다른 영웅들이 있다. 맥아더 장군은 이들을 “아나톨리아의 사자들”이라고 지칭했다. 
이들은 한국전쟁에서 유엔군의 일원으로 싸웠던 아나톨리아 반도에서 온 터키 병사들이었다. 
8000 km나 떨어진 머나먼 나라에 살고 있던 이들이 왜 돌연 낯선 땅에서 벌어진 전쟁에 참전했는지, 그것은 우리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들이 대한민국의 편에 서서 커다란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목숨 바쳐 용맹스럽게 싸워주었다는 것이다.
승선하는 터키병사들.
승선하는 터키병사들.
터키는 유엔군 중에서 미국, 영국, 캐나다에 이어 네 번째로 많은 병사를 파병했다. 하지만 희생자 비율은 가장 높았다. 
미국 전쟁평론가들의 말에 따르면 터키 병사들은 방어보다 공격을 선호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들이 방어에 나설 때는 공격할 때보다 희생자 수가 더 많았다.
한국전이 가장 치열할 때 5453명의 터키 전투여단이 부산에 상륙했다. 
터키 전투여단장은 한국전에 참전하기 위해 본인 스스로 두 개의 별을 강등시키면서까지 자원한 타흐신 야즈즈 준장이었다.

그는 이미 예순 살이 다된 노병이었지만 조국의 안보와 직결된 전쟁이라 판단했기에 최전선에 나서고자 했던 것이다. 
그의 병사들은 대부분 러시아 국경과 접한 터키 시골 마을 출신들이었다. 
이들은 무슨 영문인지는 몰랐지만 조국이 필요로 하는 전쟁이기에 마다하지 않았다. 
심지어 형제 나라 한국을 공산군에게서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차서 자신들의 참전을 지하드(聖戰)로 승화시켰다.

당시 세계는 동서로 양분된 시기였다. 터키는 미국과 소련 양자택일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독자적인 노선에 서 있다가는 아무런 보장도 없이 국가가 날아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사실 터키와 러시아는 역사적으로 수백 년 동안 앙숙지간이었다. 
지금의 러시아 남부와 크리미아 반도, 불가리아를 포함한 남슬라브 지역을 놓고 러시아와 터키는 19세기 중반까지 
다투어왔던 오랜 전쟁의 역사가 있었다.

그러나 현대 군사과학기술의 발달로 터키의 군사력이 약화하기 시작한데다가 부동항이 없는 러시아가 흑해 이남 지역으로 
남진해오고 있었기 때문에 터키는 이를 봉쇄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아마 터키가 뚫렸다면 러시아가 지중해 지역은 말할 것도 없고, 아프리카지역까지 영토를 확장했을지 모른다.

터키에 반면교사가 되었던 비극적 사건이 있었다. 
바로 구소련이 2차 세계대전을 치르기 직전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발트 3국에 보였던 “호의”였다. 
이 발트 3국은 히틀러와 스탈린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해야 했다. 
유럽 국가를 사냥하기 시작한 히틀러와 동맹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자칫 위험한 함정에 빠질 수 있다고 발트 3국이 
주저하고 있을 때 스탈린이 이들 3국에 미소를 보이며 그들을 보호해주겠다고 러브콜을 보낸 것이다.

이들은 스탈린의 러브콜을 선뜻 호의로 받아들였다. 
그러자 스탈린은 이들을 보호해주기 위한 명목으로 3000명의 군대를 파견했다. 
소련군의 진주와 더불어 반 소비에트 정치인들과 사회 유력인사들은 처형당하거나 시베리아로 유형 보내졌다. 
결국 발트 3국은 소비에트 연방에 병합되는 불운을 겪는다.

1950년 구소련은 지중해로 통하는 터키의 해협을 사이좋게 공유하자고 제안한다. 
말이 공유지 터키의 영해로 소련군이 들어오게 해달라는 뜻이었다. 
터키는 소련의 침입을 저지하고 자신의 안보를 보장받기 위해서 나토 가입이 절박한 상황이 되었다. 
이때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나토가 주축이 된 유엔군의 부름을 받은 터키에게는 절호의 기회였다.

터키군은 1950년 한국에 상륙한 지 한 달 만에 평안도 개천군 군우리 전투에 투입된다. 
중공군에게 전면적으로 포위를 당한 유엔군을 측면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영어도 한국어도 잘 통하지 않았던 터키군은 초기에 정보부족으로 상당한 희생을 치렀다. 
그래도 이들에게는 두려움을 모르는 맹렬함이라는 무기가 있었다. 
결국 협곡에 갇힌 그들은 밤낮으로 3일 동안 끈질기게 혈전을 벌인 결과 중공군의 허리를 뚫을 수 있었다.

덕분에 대규모 민간인 학살을 방지할 수 있었고, 미 8군과 미 육군 9군단이 평양으로 안전하게 퇴각할 수 있는 시간을 
벌게 해줬다. 군우리 전투를 가리켜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의문의 여지없이 유럽문명을 지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 
믿을만한 보호자는 터키군대이다”라고 평가했으며, 
시카고 트리뷴지는 “터키 인들이야말로 우리에게 최고의 동맹이 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쓰기도 했다. 
반면 구소련의 타스 통신은 미군들을 가리키며, “당신들을 구원한 것은 터키인들이었다!”라고 비아냥거렸다.

터키군은 이후 베가스 엘코, 용인 김량장, 철원 김화 등지에서 방어가 아닌 공격작전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한국전쟁 중 터키 병사 741명이 전사하고 163명이 행방불명되었으며, 2068명이 부상당했고, 244명이 포로가 되었다. 
그중 전사자 462명의 무덤이 부산 유엔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 그들의 삶은 기억되어야 할 충분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분단의 아픔을 한민족과 공유하면서 대한민국을 지켜낸 터키 참전군을 추모하며 6·25 발발 65주년을 맞아 
그들의 넋을 기린다. 지구에서 전쟁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동덕여대 오은경 교수, 외국인 최초 우즈베크서 ‘국가박사’학위 받아

(출처-이투데이 2015-01-06 정혜인 기자)

민속학 국가박사 학위 취득현지서 4년 만에 인문학 국가박사 배출돼 그 의미 남달라

▲동덕여자대학교 교양교직학부의 오은경 교수가 

우즈베키스탄에서 외국인 최초로 '국가박사' 학위를 받았다. 

(사진=연합뉴스)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인이 외국인 최초로 ‘국가박사

(Doctor of Science)’학위를 받아 화제가 됐다. 그 주인공은 바로 

동덕여자대학교 교양교직학부의 오은경(45) 교수이다. 

오 교수의 학위 취득은 외국인으로는 최초이며 우즈베키스탄 

학계에서도 4년 만에 배출된 인문학분야 국가박사여서 

그 의미가 남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2월 30일 오 교수는 우즈베크스탄 고등교육심의위원회로부터 현지 민속학 국가박사 학위를 받았고 학위 취득으로 현지학자들에게는

최고의 명예직인 우즈베키스탄 학술원 회원에 추천됐다.

우즈베키스탄의 학위 심사조건은 까다롭기 유명하다. 

현지에서 국가박사 학위를 취득하려면 교육 당국이 정해준 기간 내에 

20편 이상의 논문이 논문인용지수가 높은 외국저널에 소개돼야 한다. 

또 1년 6개월이 걸리는 5차례의 학위논문 심사를 통과해야 하며 

8개국 외국학자 20명으로부터 논문 심사평가서를 받아야 한다.

최종심사 당일에는 현장에서 우즈베키스탄 원로 교수단 20인과 

질의응답을 가진 후 이들의 찬반 비밀투표에 의해 학위수여가 

결정된다.

5일(현지시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오은경 교수는 

“고대 어느 시점에 한민족과 같은 뿌리를 가진 튀르크족의 

구비문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하는 것은 한국의 상고사 복원에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오 교수는 “한국과 유라시아와의 관계발전이 중요해진 상황에서 풍부한 경제적 발전 잠재력을 가진 우즈베키스탄의 

국내 전문가는 꼭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