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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경의 잊혀진 유라시아 이야기(8):사슴이야기③ 만병통치 불로장생 바라던 황제를 위한 특권적 치유방법?

바람아님 2015. 12. 11. 19:45

(출처-조선일보 2015.06.15 오은경 동덕여자대학교 교수)


지난 수천 년 동안 지구 상에서 “사슴의 나라”로 불릴 만한 곳이 있다. 
바로 유라시아 대륙 심장부에 있는 황금의 나라 알타이이다. 여기서는 청동기 시대 이후부터 지금까지도 계속 사슴도(圖)가 
발견되고 있다. 고고학자가 아니더라도 산길을 지나다 보면 높은 절벽에 새겨진 고대의 사슴 그림들을 쉽게 발견해 낼 수 
있을 정도이다. 이러한 바위그림들에서 사슴들은 신성함의 상징이자 사냥의 대상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 옛날에도 인간은 양면적인 존재였나 보다.

과거 그림에서 보듯 현재도 알타이는 사슴 개체 수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곳이다. 
아마 4500m 높이 만년설이 쌓인 벨루하 산을 중심으로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가파른 산들, 가을이면 불타는 단풍으로 
인간의 눈을 현혹하는 황금의 호숫가, 그 어딜 봐도 끊임없이 펼쳐지는 울창한 자작나무, 전나무, 소나무 숲들이 
선량한 눈을 가진 우아한 이 동물을 지켜오지 않았을까.
고대 사슴 벽화.
고대 사슴 벽화.
알타이에는 바야흐로 5월과 6월이 되면 전국적인 사슴 축제가 열린다. 이 축제를 즐기기 위해 수천 명이 이 고장을 방문한다. 
사실은 녹용 때문에 오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녹용 피로 목욕하기 위해서이다. 모든 동물 세계를 통틀어 젊은 사슴의 
뿔보다 더 경이로운 것이 있을까.

그래서인지 먼 옛날부터 녹용 피로 목욕을 하는 것은 강력한 치유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왔다. 중국에서는 꽃사슴 뿔에서 
추출한 귀한 액체를 2000년 동안 만병통치약으로 사용해왔으며, 윈난 성에서는 녹용엑기스가 금보다 더 비쌌고, 
녹용 피로 목욕을 하는 것은 오로지 황제와 그의 가족만을 위한 특권적 치유방법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어느 평민이 사슴피로 목욕을 한 죄로 처형을 당한 적이 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이다.

녹용은 사슴뿔이 한참 자라날 때 잘라낸 연한 뿔이다. 이때의 뿔은 벨벳처럼 부드러운 솜털이 난 가죽으로 덮여 있으며, 
피가 밴 연골 해면체 조직으로 이루어져 있다. 봄이면 녹용에는 미세세포, 생물 활성물질, 생물자극력과 치유력을 관장하는 
호르몬이 응축되어 있다고 한다. 사슴에게는 그 어떤 포유류에도 없는 강력한 재생조직이 있어서 사슴뿔은 하루에 2cm씩 
자라난다. 놀랍게도 수사슴의 머리에서 자라나는 뿔 속에는 태아 줄기세포가 있다고 한다. 
그것은 포유류 중에서 사슴에게만 있는 현상이다.
알타이 농장에서 선보인 사슴의 뿔.
알타이 농장에서 선보인 사슴의 뿔.
그뿐만 아니라 포유류 중에서 유일하게 사슴은 매년 25kg나 되는 뿔을 털갈이하듯 갈아 치운다. 
늦가을이 되면 사슴의 뿔은 경화되어 떨어져 나간다. 그리고 다음해 봄이 되면 떨어져 나간 자리에서 새로이 젊은 뿔이 
자라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러한 뿔의 재생주기는 매년 반복된다. 예전에는 뿔을 얻기 위해 사슴을 죽였다면 요즘에는 
감쪽같이 뿔만 잘라낸다.

“불로장생약”을 추출하기 위해 뿔을 자르는 시기는 신진대사가 가장 활발하고 번식하기 좋은 5~6월로 한정되어 있다. 
이래서 이 기간이 인간뿐만 아니라 사슴에게도 축제가 되는 모양이다. 뿔을 자를 때는 사슴에게 통증이나 염증을 유발하지 
않게 하기 위해 다수의 숙련가들이 매달려 눈을 가리고 피를 멈추게 하는 가루를 뿌려주며 “인도주의적으로” 뿔을 잘라낸다. 
그들의 솜씨는 이미 예술적 경지에 도달해 있다.

낡은 조직은 죽어버리고 새로운 조직이 해마다 탄생하는 것은 뿔만이 아니다. 사슴의 피부, 결합조직, 연골, 뼈, 혈관, 
신경 조직들도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재생된다. 이러한 갱생을 위해 사슴은 극도로 압축된 물질과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비축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어른 사슴이 보통 1m60cm의 키에 250~400kg 나가는 탄탄한 몸매를 유지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젊은 사슴의 뿔을 자르면 한 마리당 1.5L의 피가 나온다. 그 피를 모아 뜨겁게 덥히고 나서 욕조 가득히 채워 녹용 피 
목욕마사지를 한다. 황제 힐링 목욕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목욕은 하루 걸러 매번 20분씩 10번 해야 효험이 있으며, 
이 목욕은 면역력 증진, 스트레스 저항력 강화, 노화방지, 원활한 혈액순환, 성기능 향상, 관절통 및 만성피로 해소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한 번에 20분 이상 받으면 고혈압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현지 의사들과 상담 후에 녹용 피 욕조에 들어가야 한다. 
이미 1990년 전에 현대식 사슴과학연구소를 개설한 알타이에서는 사람들의 건강개선과 회춘을 위해 사람들에게 
‘사슴을 바치는’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사슴의 피로 목욕을 하는 모습.
사슴의 피로 목욕을 하는 모습.
자연 청정지역에서 자라난 알타이 사슴의 뿔은 전 세계에서 가격이 가장 높다. 
한국, 중국, 미국, 뉴질랜드에서도 녹용이 생산되지만, 알타이산은 평균 1.5~2배나 비싸게 팔린다고 하며, 
알타이 녹용 중의 90%는 한국과 중국으로 수출된다. 어른 사슴은 매우 다혈질적이고 공격적이다. 
수컷들은 틈만 나면 자기네끼리 싸운다.

수사슴들은 서너 마리의 암컷으로 이루어진 “하렘”을 가지고 있지만, 암컷이 다른 수컷을 찾아간다 해도 굳이 말리지 않을 
정도로 민주적이다. 새끼가 달린 암컷은 새끼가 위험에 처하면 맹수에게도 달려들 정도로 모성애가 강하고 대담하다. 
그러나 아무리 담대한 사슴이라 하더라도 사슴은 인간을 가장 무서워한다. 야생 사슴들은 인간의 냄새를 맡는 순간 바람처럼 
사라진다.

사슴이 싫다고 하는데도 인간은 왜 그토록 끈질기게 사슴을 쫓아다닐까. 
해마다 재탄생하는 사슴의 영원한 청춘을 구현하고자 하는 인간의 오래된 꿈 때문이 아닐까….



오은경의 잊혀진 유라시아 이야기 전체 보기

1.金씨 성은 황금을 뜻하는 '알타이'에서 출현한 것일까?

     http://blog.daum.net/jeongsimkim/12608

2.아버지를 활로 쏴 고슴도치 만든 흉노족 샤누이 모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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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뜨거운 태양 아래 낙타 젖통가죽을 삭발한 포로 머리에 씌우면…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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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남자들이 말타기, 활쏘기, 씨름할 때 여자들이 유독 씨름판에 관심을 둔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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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사슴 이야기② 사슴을 추적해 7일째… 맨손으로 잡은 한국 사냥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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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한국전쟁서 싸웠던 '아나톨리아의 사자들' 누구?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6/24/201506240254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