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토요판] 정재승의 영혼공작소
(1) 왜 신경과학인가
지구상의 70억 인구 중에서 ‘영혼’의 존재를 믿는 사람이 무려 93퍼센트다. 다시 말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간의 고귀한 정신작용은 물리학 법칙으로 환원될 수 없으며 생물학적인 원리로는 설명되기 어렵다고 믿는다. 400년 전, ‘마음은 몸으로 설명될 수 없다’고 주장한 데카르트의 이원론을 다들 지지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신경과학자들은 지난 100년 동안 온갖 실험들을 통해 지금까지 영혼이라는 비물질적인 가설로 설명해온 많은 정신작용들이 물질적 속성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증명해왔다. 뇌 속 신경전달물질의 양을 바꾸고, 뇌의 특정 영역에 전기 자극을 줌으로써 조절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편도체의 세로토닌 양을 높이면 행복감을 느끼고, 전두엽에 자기장을 가하면 망상과 의심이 줄어든다. 뇌 내 옥시토신 농도가 높아지면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깊어진다.
분노할 필요는 없다
행복감이나 신뢰감처럼 고차원적이고 복잡한 개념이 뇌 내 신경전달물질로 조절된다는 것은 영혼이 존재하더라도 뇌와 연결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아직 뇌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어서 속단하긴 이르지만, 이런 노력이 계속 지속되면 우리는 굳이 ‘영혼’이라는 가설을 도입하지 않고도 인간의 고귀한 정신작용을 뇌의 생물학적 기작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른다. 나는 그렇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는 7퍼센트의 사람들 중 하나다.
인간의 고귀한 정신이,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정체성이 1.4㎏의 뇌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이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것일까? 육체가 소멸되면 정신도 함께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도덕적으로 살 필요가 없는 것일까? 오히려 우리는 정신이라는 위대한 속성을 탄생시킬 만큼 물질이 그 자체로 경이로운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물질은 정신이 위대한 만큼 더불어 위대하며, 이 우주는 물질을 통해 정신이라는 ‘물질을 이해하는 토대’를 비로소 만들어낸 것이다.
두개골로 감싸고 그것으로도 부족해 척수액으로 둘러싸여 가장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는 신체 기관인 뇌는 인간의 사고와 행동이 만들어지는 곳이다. 뇌는 우리가 만져볼 수 없는 기관이라 통각 수용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뇌를 꺼내어 바늘로 찔러도, 전혀 아프지 않다. 그 정도로 뇌는 안전하게 보호돼 있다.
유전적으로 타고났든, 경험에 의해 후천적으로 얻게 되었든, 어떤 것도 뇌의 변화를 만들어내지 않고서는 사고와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 설령 영혼이 존재한다 해도, 그 안식처는 ‘뇌 언저리’여야 한다. 당신이 이전보다 더 성숙한 인간이 되었다는 뜻은 당신의 뇌가 바뀌었다는 뜻이다.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뇌의 생물학적인 기작으로 설명한다고 해서 ‘그렇다면 인간의 행동이 생물학적으로 타고났단 말인가!’라고 분노할 필요는 없다. 인간의 뇌는 다른 어떤 기관보다도 후천적인 경험에 의해 가장 많이 변하는 기관이다. 교육과 경험, 사고하는 방식이 얼마든지 당신의 뇌를 바꾸어놓을 수 있다. 다만, 경험이 뇌의 회로를 변화시키고 신경전달물질과 전기신호들을 바꾸어놓아야만 당신의 사고와 행동이 변한다. ‘인생의 목표는 성공이 아니라 성숙’이라는 말을 실천하고 싶다면, 뇌가 성숙해지도록 애써야 한다.
뇌에 관한 연구 노력 지속되면
인간의 고귀한 정신작용을 뇌의
생물학적 기작만으로 설명 가능
나는 그렇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는 7%의 사람들 중 하나다
왜 박근혜는 문재인을 꺾었나
왜 아이폰에 그토록 열광하나
세월호 가라앉는 순간 왜 우린
숨이 막히고 고통스러웠나
신경과학은 답할 준비가 돼있다
뇌는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마지막으로 통과해야 할 관문인 동시에, 남과 구별되는 나의 정체성이 형성되는 영혼 공작소다. 손과 발이 달라서가 아니라 뇌가 남들과 달라서 ‘나’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의 뇌를 다른 몸으로 옮긴다고 해도 여러분들은 여전히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뇌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나는 누구인가? 내 주변 사람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우리 사회는 왜 이런 집단행동을 보이는 걸까? 이런 질문들에 답을 찾는데, 신경과학은 작지만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지금 전세계는 신경과학에 주목하는가? 왜 신경과학과 뇌공학 연구에 엄청난 연구비를 지원하는 걸까? 아마도 그것은 최근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뇌영상 기술 덕분일 것이다. 최근 50년간 우리가 뇌에 대해 알게 된 사실들은 그 이전 500년 동안 우리가 뇌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보다 많다. 이제 과학자들은 하나의 신경세포에서부터 뇌 회로까지, 뇌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촬영하고 측정할 수 있게 됐다.
게다가 두개골을 열지 않고도 뇌 안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측정할 수 있는 뇌영상 기술이 등장하면서, 인간이 인지적인 행동을 하는 동안 뇌의 생물학적 변화를 관찰할 수 있다. 섬세하고 정교하게 뇌 안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됐고, 간편하게 뇌 활동을 관찰할 수 있게 됐다.
이제 누구나 뇌파를 측정할 수 있는 장치를 온라인 쇼핑몰에서 30만원이면 살 수 있다. 뇌에 전기 자극을 주는 장치가 디아이와이(DIY) 조립식으로 만들어져서 2만원이면 구입할 수 있다. 뇌파 게임 앱도 내려받을 수 있다. 바야흐로 뇌공학 일상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그 덕분에, 이제 우리는 사람들이 감정을 가질 때, 상황을 판단할 때, 기억을 할 때 뇌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조금씩 이해하게 됐다. 사람들이 왜 그런 반응을 보였고,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게 됐다.
그렇다면 신경과학자들에게 묻고 싶은 궁금한 사항들이 마구 떠오를 것이다. 왜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와 버락 오바마 후보는 문재인과 존 매케인 후보보다 더 많은 표를 얻었을까? 왜 전세계인들은 수많은 스마트폰들 중에서 아이폰에 그토록 열광하는가? 왜 반 고흐와 피카소의 작품을 보면 우리는 아름답다고 느끼는 걸까? 왜 성당에 들어가면 경건해지고 집에 돌아오면, 제일 먼저 소파에 눕고 싶은 걸까? 왜 나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벌어진 일인데도, 세월호가 가라앉는 순간 우리 마음도 숨이 막히고 한없이 고통을 느꼈던 것일까? 파리에서 총격으로 수백명이 목숨을 잃고, 광화문 시위 현장에서 물대포를 얻어맞은 사람들을 보며, 우리는 왜 가슴이 먹먹해지는 걸까? 이제 신경과학이 이런 질문들에 대답할 준비가 조금은 돼 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신경과학과 인문학의 만남
신경과학자들은 ‘뇌’라는 렌즈를 통해 인간이 어떻게 정치적인 선택을 하고, 경제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지 추적하고자 한다. 미학적인 평가는 어떻게 이루어지며, 도덕적인 판단은 어떻게 벌어지는지 논쟁하고자 한다. 이것을 어떻게 마케팅에 이용하고, 현대 철학을 다시 바라보며, 법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도 얘기하고자 한다. 공간은 사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인간관계는 우리를 어떻게 바꾸어놓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 연재물은 신경과학적인 관점에서 정치학·경제학·건축학·미학·마케팅·윤리학 등을 다시 들여다보고, 뇌의 작동원리를 통해 인간의 사회적 행동에 대해 작은 통찰을 제공하려는 목적으로 기획됐다. 신경과학 내부에서는 뇌에 대한 이해가 아직 깊지 않은 상태에서 신경과학자들이 온갖 인문사회과학 분야를 기웃거린다고 비아냥대기도 한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지적 탐구’의 지형도를 새롭게 그리고, 인간에 대한 신경과학적인 이해가 인간 탐구에 더해지면 더 깊은 통찰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환기하려고 한다. 인간은 하나의 관점으로 이해되기에는 너무도 복잡한 존재이니까.
1000억개로 이루어진 세포 덩어리가 어떻게 137억년을 버텨온 우주를 이해하는 지성을 만들어냈는지, 70억명의 인간들은 어떻게 서로 다른 정체성을 갖게 됐는지, 그 지적 호기심이 신경과학의 출발이다. 이 흥미로운 질문들은 뇌를 이해할수록 더 경이로운 질문이 되어갈 것이다.
정재승
▶ 정재승카이스트(KAIST·한국과학기술원)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카이스트 물리학과에서 학부를 졸업하고 박사를 받은 뒤 예일대 정신과 연구원, 컬럼비아의대 정신과 조교수 등을 거쳤다. <정재승의 과학콘서트>,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 <크로스>(공저) 등의 책을 냈다. 신경과학적인 관점에서 인간과 사회의 행동을 탐구하는 연구를 해오고 있다. 이 연재물은 영혼을 조종하는 뇌의 탐구를 통해 자연과학과 공학·인문학·사회과학이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를 모색하려는 시도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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