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 인 골드’. 우리말로 ‘황금빛 여인’ 영화는 올여름 많은 사람이 보고 좋아했다. 1930년대 말 오스트리아를 침략한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에 정착한 여인이 유대인 사업가가 조카인 자신에게 남겼던 클림트(1862∼1918)의 초상화를 되찾는 데 성공한 실화를 그렸다. 미국과 오스트리아를 오가는 법적 다툼의 반전(反轉) 재미에다 약탈 문화재의 귀속에 대한 국제적 쟁점은 강점 일본에 빼앗긴 문화재가 많은 우리로선 타산지석(他山之石)도 될 만했다.

채용신, ‘운낭자상’· 국립중앙박물관.
초상화는 사업가가 클림트에게 당신의 아내를 그리게 해서 1907년에 완성됐다. 나중에 또 한 점을 그렸기 때문에 문제의 초상화는 영화 제목처럼 금박이 번쩍이는, 아내 이름을 딴 ‘아델레 블로흐-바우어 1’인데 오스트리아미술관의 자랑이었다.
소송의 쟁점이 정부 쪽은 나라에 준다는 아내 아델레의 유증서(遺贈書)를 근거로 반환은 당치 않다고 자신만만해 하는 사이, 미국 변호사는 그림값을 지불한 사람이 남편 사업가이기 때문에 유증은 유효하지 않다, 따라서 법적 상속권자가 정당한 소유자라고 주장했다. 미국 대법원까지 올라간 끝에 조카에게 유리한 판결이 나자 담당 장관은 사태가 심각함을 눈치챘다. ‘오스트리아의 모나리자’를 지키려고 안간힘이었지만, 여인은 미국으로 가져가서 에스티 로더 화장품에 상설 공개 조건으로 1500억 원에 넘겼다.
주문받은 여인 초상화는 단정하게(?) 그렸던 클림트이지만, 스스로 몰입한 그림엔 여성의 욕정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당대의 절세미인 그레타 가르보와 마를레네 디트리히 여우를 좋아했던 화가는 미술사적으로 ‘인류 구원은 예술을 통해서’ 그리고 ‘여성의 욕정은 해방의 한 원동력’이라 보았다.
영화를 통해 그림 사랑의 지평을 넓힌 경우로 네덜란드 화가 베르메르(1632∼1675)의 일대를 다룬, ‘진주 귀걸이 소녀’ 그림 이름의 영화도 있었다. 일본 나들이에서는 전시장 입간판에다 ‘일기일회(一期一繪)’ 곧 ‘한평생에 겨우 한 번 만날 그림’이라 적고는 그 풀이도 곁들였다. ‘별처럼 많은 미술 작품 가운데서 일생 동안 대면할 수 있는 것은 한 움큼에 지나지 않는다. 그건 어쩌면 사람과 사람의 만남보다 더 운명적일지도 모른다.’ 이 조어는 ‘일생에 단 한 번 만나는 인연’의 자리에 차를 나눈다는 선가(禪家)의 ‘일기일회(一期一會)’를 패러디한 말이었다.
‘북구의 모나리자’로 사랑받는 그림의 모델은 영화에서 화가 집 하녀로 설정했다. 처가살이의 베르메르가 자녀 열넷을 두었음은 아내가 다른 데서 이미 여럿을 낳았던 ‘헌 여자’였고, 부부 금실도 좋지 않았다는 미술사에 근거했다. 그러면 다빈치가 그린 루브르의 모나리자는 어느 나라 미인인가. 1911년에 도둑맞았을 때 루브르 앞 광장에 사람들이 운집해 통곡했다니, 그림 사랑치고는 처절했다. 2년 뒤 붙잡힌 범인은 “이탈리아의 명작을 고국에 돌려주고 싶어서”라 했다. 변명대로 피렌체의 부유한 상인 조콘다의 부인 리자의 24∼27세 무렵 초상화다.
이탈리아의 주인공 이래로 어느새 북구에도 오스트리아에도 모나리자로 사랑받는 그림이 있음은 모나리자가 절대가인(絶代佳人)을 일컫는 보통명사가 되었다는 말이었다. 이전은 미술 지망생이 데생 연습을 하던 비너스였다. 비너스 자리를 모나리자가 차지한 셈이었다.
미녀 사랑은 동서양이 다르지 않다. 다만 서양과는 달리, 동양은 말 잔치 쪽이다. 넋을 잃을 정도의 중국의 4대 가인 가운데 둘만 보기로 든다면, 다리 위에 선 서시(西施)를 올려본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을 잊고 가라앉았다는 침어(浸魚), 그리고 왕소군(王昭君)을 내려다본 기러기가 그만 날갯짓을 잊어버려 땅에 떨어졌다는 낙안(落雁)이 있었다.
어쨌거나 나라의 문화 현창에는 미인도가 한몫하는 것이 지구화 시대 방식이라면 어떤 미인도가 한류의 아름다움을 대표할 것인가. 우선, 박물관 사람 최순우는 풍류남의 소첩(少妾)을 그렸다는 신윤복의 미인도를 꼽았다. 간송미술관이 일반 공개했을 때 관람객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나는 어쩐지 게이샤를 모델로 미인도로 많이 그렸던 기타가와 우타마로(喜多川歌麿·1753∼1806)가 연상되곤 했다. 일본의 문화 속성이 ‘탐미는 곧잘 외설로 흐르고’ 그만큼 ‘사랑과 치정이 별로 구별이 없다’던 소설가 박경리의 비판이 그대로 기타가와의 경우이고, 이 점은 춘의도(春意圖)도 꽤 많이 그렸던 신윤복도 닮았다.
나더러 골라라 하면 어용화사 출신 채용신(蔡龍臣·1850∼1941)이 그린 ‘운낭자상’을 꼽고 싶다. 기적(妓籍)에서 빠져나와 평안도 가산 군수의 소실이 된 스물일곱 여인이 자랑스럽게 젖가슴을 드러낸 채 아들을 안고 있는 그림이다. 일본에서 최근 국내로 반입되었다는 고려미인도 역시 아들을 안고 어른다는 ‘미인자애(美人子愛)’란 제목이었다. 여인의 절정 아름다움을 모성에서 찾았던 전통적 정서가 오늘에도 이어져 어머니가 강함이 한국 문화의 한 특질이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인도의 주인공이 반드시 건강한 아름다움만은 아니었다. 초상화 미술에 정통한 전문의의 진단(이성낙, 2011)에 따르면 북구의 모나리자도, 터번으로 머리를 가리고 있음이 말하듯, 머리털은 물론 눈썹과 속눈썹이 빠진 ‘전신성 무모증(無毛症)’ 환자라 했다. 그래서 생각인데 성형외과가 몰려있는 서울 강남의 거리 간판에 우르르 등장한 우리 미인들이 모두 닮은꼴임도 ‘병적으로’ 보였다. 그들이 길가에서 서로 마주쳤을 때 또 다른 자신을 만나는 꼴이 얼마나 낭패일까, 공연한 걱정도 들었다.
김형국 / 서울대 명예교수
[‘아델레 블로흐-바우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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