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떻게 대응했을까. 남은 역사 기록이 빈약하다. 현재 남은 최초의 의방서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 고려시대 몽골 침입 때인 고종 23년, 1236년 강화도 대장도감에서 간행된 책이다. 이 책이 만들어지기 4년 전, 몽골의 사르타크(撒禮塔) 군대는 다시 고려를 침입했다. 전쟁의 공포에 약을 쉽게 구하지 못했을 백성을 위한 처방일까, 향찰로 쓰인 이 책에는 ‘구급방’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 앞에 붙인 말 ‘향약’. 중국 약재는 ‘당재(唐材)’라고 했으니 이 책에는 우리의 의방 전통이 담겨 있었다.
그 이전에는 어땠을까. 향약이라는 이름이 나오자면 면면히 이어지는 전통이 있지 않을까. 삼국사기에 남은 기록. “의학(醫學)을 효소왕 원년에 처음 설치했다.” 의학은 병을 다스리는 기관 이름이다. 이 해는 삼국통일 24년 뒤인 692년이다. 60년 뒤 기록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 “약전(藥典)을 경덕왕 때 고쳐 보명사(保命司)라고 했다.” 약전은 약을 다루는 관직명이다. 의학에서 연구한 처방은 무엇이었을까.
그 실마리를 푸는 단서가 발견됐다. 연세대 동은의학박물관 연구팀이 9세기 초 일본 헤이안 시대 때 만들어진 ‘대동유취방’에서 고대 한반도에서 건너간 37가지 처방전을 찾아냈다고 한다. 신라 관서 명칭으로 보이는 해부(海部)와 의생 이름도 나온다. 구멍 난 의학사의 틈을 메우는 큰 발견이다.
우리나라 전통 의학은 동의(東醫), 한의(韓醫)로 불린다. 허준이 집대성한 ‘동의보감’. 우리 의학사의 자존심을 세운 불후의 명작이다. 이 책은 청나라에서도 간행됐다. 청에서 간행된 동의보감 서문에 능어(凌魚)는 이렇게 썼다. “좌한문은 동의보감을 널리 보급하겠다며 돈 300꾸러미를 아낌없이 내놓았다. 그는 병든 사람을 구제하고 만물을 이롭게 하고자 했다.” 좌한문만 그런 마음을 먹었을까. 동의보감을 쓴 허준과 그의 후예들은 어떠했을까. 의료기기 사용을 놓고 싸움을 하는 한의사와 양의사들. 제세구민(濟世救民)의 뜻은 어디에서 찾을까.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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