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설왕설래] 동의(東醫)

바람아님 2016. 1. 27. 00:42
세계일보 2016-1-26

생로병사. 불교에서 말하는 사람의 네 가지 고통이다. 태어나는 것이야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나머지 세 가지는 달랐다. 병들지 않고, 늙지 않고, 죽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응전으로 이어진다. 백 가지 약초를 직접 시험했던 신농씨(神農氏). 불로초도 등장한다. 불사의 약을 구하고자 했던 진시황. 방사 서복(徐福)에게 불로초를 구해 오도록 했다. 동남동녀(童男童女) 3000명을 데리고 간 서복은 소식을 끊었다. 황제는 얼마나 화가 났을까. 분서갱유(焚書坑儒). 땅에 묻힌 학자는 대부분 소유(小儒)로 불린 도가 학자였다.

우리는 어떻게 대응했을까. 남은 역사 기록이 빈약하다. 현재 남은 최초의 의방서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 고려시대 몽골 침입 때인 고종 23년, 1236년 강화도 대장도감에서 간행된 책이다. 이 책이 만들어지기 4년 전, 몽골의 사르타크(撒禮塔) 군대는 다시 고려를 침입했다. 전쟁의 공포에 약을 쉽게 구하지 못했을 백성을 위한 처방일까, 향찰로 쓰인 이 책에는 ‘구급방’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 앞에 붙인 말 ‘향약’. 중국 약재는 ‘당재(唐材)’라고 했으니 이 책에는 우리의 의방 전통이 담겨 있었다.


그 이전에는 어땠을까. 향약이라는 이름이 나오자면 면면히 이어지는 전통이 있지 않을까. 삼국사기에 남은 기록. “의학(醫學)을 효소왕 원년에 처음 설치했다.” 의학은 병을 다스리는 기관 이름이다. 이 해는 삼국통일 24년 뒤인 692년이다. 60년 뒤 기록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 “약전(藥典)을 경덕왕 때 고쳐 보명사(保命司)라고 했다.” 약전은 약을 다루는 관직명이다. 의학에서 연구한 처방은 무엇이었을까.


그 실마리를 푸는 단서가 발견됐다. 연세대 동은의학박물관 연구팀이 9세기 초 일본 헤이안 시대 때 만들어진 ‘대동유취방’에서 고대 한반도에서 건너간 37가지 처방전을 찾아냈다고 한다. 신라 관서 명칭으로 보이는 해부(海部)와 의생 이름도 나온다. 구멍 난 의학사의 틈을 메우는 큰 발견이다.


우리나라 전통 의학은 동의(東醫), 한의(韓醫)로 불린다. 허준이 집대성한 ‘동의보감’. 우리 의학사의 자존심을 세운 불후의 명작이다. 이 책은 청나라에서도 간행됐다. 청에서 간행된 동의보감 서문에 능어(凌魚)는 이렇게 썼다. “좌한문은 동의보감을 널리 보급하겠다며 돈 300꾸러미를 아낌없이 내놓았다. 그는 병든 사람을 구제하고 만물을 이롭게 하고자 했다.” 좌한문만 그런 마음을 먹었을까. 동의보감을 쓴 허준과 그의 후예들은 어떠했을까. 의료기기 사용을 놓고 싸움을 하는 한의사와 양의사들. 제세구민(濟世救民)의 뜻은 어디에서 찾을까.


강호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