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독자 칼럼] '위기'는 일반계高가 아니라 교육 당국에 있다

바람아님 2016. 1. 29. 07:51

(출처-조선일보 2016.01.29 조주행 前 서울 중화고 교장)


조주행 前 서울 중화고 교장위기에 처한 일반계 고를 살려야 한다며, 
서울시 교육청이 자율형 사립고를 폐지하는 한편 일반계 고에 특별 예산을 지원하더니 얼마 전에는 
서울교육연구정보원이 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인문계 고의 대학 진학률이 형편없이 낮아졌다 하여 일반계 고를 위기라고 보는 것은 적절치 않다. 
진학 실적이 저조한 것은 학습 능력의 전반적 하향을 불러온 평준화 정책의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당국이 다양한 특목고를 만들어낸 데 따른 당연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바라는 대학에 진학하면 그만이다. 
일반계 고를 통해서든 특목고를 통해서든 상관없다. 
학생은 누구나 적성과 희망에 맞추어 진로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작금의 '일반계 고 위기론'은 '특목고를 통한 진학은 바람직하지 않고 일반계 고를 통해 진학해야 옳다'는 식의 억지로 들린다. 
교육청이 개입해 특목고에 가려는 학생들을 일반계 고로 유턴시키려는 처사는 흐름에 역행하는 폭거가 아닐 수 없다.

당국이 정작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일반계 고 살리기 대책은 학교 안에서 자라고 있는 사회 불안의 싹을 차단하는 일이다. 
변두리 일반계 고는 학업을 포기한 학생이 60~70%에 이른다. 
공부하려는 소수와 공부를 포기한 다수가 이중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면서 졸업생의 절반 이상이 진학도 취업도 못한 채, 졸업과 동시에 사회의 저층민으로 전락하고 있다. 
선량한 이웃으로서 협력하며 성실하게 살아갈 준비를 갖추지 못한 것이다.

공부를 포기한 학생의 상당수는 이른바 '생활 부적응' 혹은 '비행 학생'이다. 
일부는 말썽도 자주 피운다. 수업의 훼방꾼이며 친구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금품을 갈취하기도 한다. 
가족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학생이 많고, 교사들에게도 이들을 관찰하고 계도할 여유가 없다.

당국에서는 이런 학생들을 위해 수업료, 보충수업비, 특별활동비, 식사비를 지원하고 학습을 독려했지만 
성과를 올릴 수 없었다. 
원인은 간단하다. 공부를 포기한 이들에게 공부를 시키려 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학습 포기는 이르면 초등학교 때 시작돼 자포자기 상태에 있었기에 
고교 입학 무렵에는 '나는 공부할 사람이 아니다'라는 폐쇄적 의식이 고착화된 것으로 보인다. 
이를 단기간에 혁파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서울교육연구정보원이 제시한 연합형 종합 캠퍼스 모형은 기존의 중점학교 모형과 별반 다르지 않아서 
스스로 노력하는 일부 학생 외에는 성과가 있을 것 같지 않다. 
특정 방법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현장 교원들이 실정에 맞는 방법을 택하도록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 
학생들을 억지로 가르치려는 욕심을 버리고, 그들 입장에서 그들이 원하는 것을 하도록 격려하고 지원하는 간접적 접근이 
바람직하다. 견학과 체험 중심의 프로그램도 필요하다. 
특히 다른 사람 에게 피해 주지 않고 작은 것에 만족하며 스스로의 노력으로 살아가는 건강한 시민을 길러내는 데 
목적을 둬야 옳다.

중요한 것은 진정으로 학생들을 존중하고 염려하는 마음에서 조건 없이 베풀어 학생들 스스로 고마움과 성취감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이 과정은 어렵고 지루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결과가 가져올 효과를 생각하면 비용이 크다 해도 아깝지 않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