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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남정욱의 명랑笑說]나한테 편지 좀 그만 보내세요

바람아님 2016. 1. 30. 21:08

(출처-조선일보 2016.01.30 남정욱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

[남정욱의 명랑笑說] 익명의 편지마다 학벌 트집잡아 인신공격
대학교 연대해 시위할 때 서울대와 타대학 수준 같지 않다 생각하던 80년대 운동권 보는 느낌

남정욱의 명랑笑說
가끔 익명의 편지를 받는다. 보통 이렇게 시작한다. 
'수구 꼴통 남정욱 보아라'. 
'보아라' 대신 '보거라'도 있는데 이건 고향에 계신 아버님이 보낸 듯 좀 
친근하게 느껴진다. 
짐작하셨겠지만 소생이 하고 다니는 짓이나 쓰는 글이 마음에 안 드시는 
분들이 보낸 거다. 내용을 꼼꼼히는 아니더라도 대충 훑어는 본다. 
쓰고 출력하고 우표 값 들여서 보낸 건데 그 정도 성의는 보여야지. 
대부분은 이 나라에 대한 비판과 비난이다. 
대한민국이 얼마나 지옥인지 자살률, 이혼율 등 사회 전 부문을 싹 훑으신다. 
철자법을 보면 분명 요즘 세대는 아닌 것 같은데 대체 어디서 살다 오셨는지 
모르겠다. 대한민국은 1948년 8월 15일을 기준으로 비포(before)와 
애프터(after)가 선명한 나라다.

재미있는 건 편지마다 빠지지 않는 인신공격이다. 
학벌 가지고 트집을 잡으신다. 
이 칼럼을 통해 몇 번 비쳤지만 소생, 공부를 못했고 당연히 학벌 안 좋다
(얼마나 안 좋냐면 '그걸 학벌이라고 쓰느니 차라리 고졸이라고 하는 게 낫다'는 분이 계실 정도다). 
그런데 학벌이 신통찮으면 자유주의 운동도 못 하나? 마치 1980년대 운동권을 보는 느낌이다. 
전선(戰線)에 있던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당시 운동권들 학벌 엄청나게 따졌었다. 
경기동부연합으로 이석기 일당이 주목받았을 때 나는 다른 것에 놀랐다. 
한 대학의 분교에서 이런 운동권 인물이 나오다니. 그 학벌로 운동권 조직을 장악하고 끌고나갔다니. 
단언컨대 이석기 사건은 남한 좌익 운동사에서 대단히 예외적인, 아니 유일한 케이스다.

80년대 운동권은 대부분 네 조직으로 구성된다. 
조직국, 선전·선동국, 투쟁국, 연대사업국. 이 중 제일 중요한 게 연대사업국이다. 
당연히 연대(延大)에서 하는 사업이 아니라 연대사업(連帶事業)이다. 
이게 뭐하는 거냐면 각종 연합시위 등을 조직하는 것으로 학교 간 연락 조직인 셈이다. 
그런데 정확히는 학교 간 연대가 아니다. 가령 서울의 중위권 대학에서 서울대 연대사업국과 접촉을 한다고 치자. 
그러면 서울대와 중위권 대학의 동등하고 수평적인 연대가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접촉한 대학은 연대사업국 산하의 서울대 학과 하나와 같은 급으로 배치된다. 
학교를 학과 하나 수준으로 보는 것이다. 기분 나빠도 어쩔 수 없다. 
자체적으로 시위를 조직할 수 있는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성균관대 말고는 다 이런 취급을 받았다. 
그래서 감옥도 학벌 순으로 간다는 말까지 나왔다. 편지 보내신 분의 정서에도 아직 그런 게 깔려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하다. 
어쨌거나 공부 못해서 미안하다. 학벌 나빠서 죄송하다.

답장이 불가능한 까닭에 지면을 통해 말씀드리자면 이제 이런 편지 좀 안 보내셨으면 좋겠다. 
편지 보내신 분들은 소생이 반공, 반북 교육에 찌들어서 헛소리를 지껄이고 다닌다고 하시는데 
나는 반공 교육이 아니라 친공(親共) 교육에 찌들어 있다가 탈출한 사람이다. 
혹시 편지를 통해 상처를 주려는 의도가  있다면 그것도 접으시기를 부탁드린다. 
멘털 하나로 버틴 50년이다. 어지간한 일에는 상처 안 받는다. 
말나온 김에 하나 더 부탁드리자면 학과 사무실에 전화해서 행패 좀 그만 부리셨으면 좋겠다. 
조교들은 소생이 뭐하고 다니는지도 모른다. 
연구실 전화번호도 묻지 마시라. 대한민국에서 겸임에게까지 연구실을 내주는 아름다운 대학은 없다
(앗, 이건 좀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