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태평로] '응답하라 1960년대'

바람아님 2016. 1. 31. 08:19

(출처-조선일보 2016.01.30 김기철 문화부장)


김기철 문화부장 사진최고 시청률 19.6%를 기록하며 한국 방송사를 다시 쓴 케이블TV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응팔)의 

열기가 식지 않는다. 주요 배역들이 광고 모델로 영입되면서 돈방석에 앉는가 하면, 일거수일투족이 

연예 뉴스의 선두를 달리고 있다. 1980년대 후반 서울 변두리 쌍문동 골목을 무대 삼아 가족과 이웃의 

따뜻한 정(情)을 담은 얘기가 만인의 공감을 샀기 때문일 것이다. '응팔'이 방송을 탔을 때, '흙수저'니 

'헬조선'이니 하며 우울한 현실을 빗댄 유행어가 나돌았기에 시청자들은 드라마에서 더 위로를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응팔'의 인기를 보면서 고(故) 이한빈 경제기획원 장관과 최정호 교수를 떠올린 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독서 체험 때문이다. 

1964년 베를린대 유학생이자 신문사 특파원이던 서른둘 최정호와 스위스 대사였던 서른아홉 이한빈이 1964년부터 

5년 6개월간 주고받은 편지 50여 통을 모은 '같이 내일을 그리던 어제'였다. 

'조국의 미래에 대한 뚜렷한 전망 없이 객지에서 배회하는 자신의 모습을 반성할 때마다 탈주병과 같은 부끄러운 양심을 

느끼곤 합니다.' 유학생 최정호는 '경애하는 이 선생님께'로 시작하는 편지에서 1960년대 중반 1인당 국민소득 100달러에 

허덕이던 가난한 조국의 처지를 안타까워했다.

이한빈은 '땅이 좁고 자원도 없는 나라가 살아남으려면 개인은 기술을 가져야 하고 나라는 수출을 해야 한다"고 편지를 썼다. 

그는 강소국(强小國) 스위스의 생존 전략을 탐구한 책 '작은 나라가 사는 길: 스위스의 경우'를 쓰면서 후배 최정호의 '감수'를 

요청했고, 최정호는 기꺼이 이한빈의 원고를 검토하며 대한민국의 나아갈 방향을 고민한다.

두 사람의 만남은 1968년 미래학회의 발족으로 이어졌다. 

인문·사회과학계는 물론 자연과학 연구자까지 포함, 경제 발전부터 삶의 질 향상까지 당대의 과제를 둘러싸고 머리를 맞댔다. 

미래학회가 1970년 발표한 보고서 '21세기 한국의 미래'는 학계와 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4·19와 5·16을 거치면서 격변을 거듭하던 조국의 장래를 걱정하며 어떻게 하면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지 고민하던 

두 인문주의자(人文主義者)의 교류가 만들어낸 결실이었다.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나라 살림은 윤택해졌고 국가의 위신도 올라갔지만, 목하(目下) 한국 사회의 정서는 우울하고 

비관적이다. 정치권은 선거에 올인하느라 이합집산에 바쁘고 일자리와 연금 등을 놓고 세대 갈등까지 위험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지역과 계층, 연령별로 갈라진 사회를 하나로 묶기 위해 머리를 싸매도 모자랄 판인데 무기력하게 손 놓고 

있거나 정치권을 기웃거리며 갈등을 부추기는 데 앞장서는 지식인들까지 있다.

'응팔'이 불러낸 1980년대 후반은 드라마처럼 따뜻하고 본받을  만한 완벽한 모델은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50년 전의 한국도 되돌아가고 싶은 미래(未來)는 아니다. 

그러나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땀 흘리고 애썼던 지식인들의 열정만은 다시 보고 싶다. 

우리 세대는 영화 '국제시장' 주인공 덕수가 자식 대신 힘든 세상 풍파를 견딘 게 다행이라며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라고 한 것처럼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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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행복한 나라'

(출처-조선일보 2015.04.27 김태익 논설위원)

"미비한 대로 '작은 나라가 사는 길:스위스의 경우' 원고를 보내드립니다. 

자유롭게 코멘트와 가감(加減)을 해주십시오." 1965년 3월 10일 스위스 대사 이한빈은 신문사 베를린 특파원인 최정호에게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낸다. 이한빈은 최초의 스위스 주재 한국 대사였다. 

'작은 나라가 사는 길…'은 한국인 시각에서 스위스의 발전 비결을 정리한 최초의 저서일 것이다. 

당시 이한빈은 서른아홉, 최정호는 서른둘 나이였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50여통의 편지가 '같이 내일을 그리던 어제'라는 책에 수록돼 있다. 

이한빈의 편지를 받은 최정호는 책 제목에 대한 의견을 보내고 바로잡아야 할 부분 등을 지적한다. 

50년 전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 연간 수출액이 1억달러에 지나지 않았다. 

편지에는 '작은 나라' 대한민국이 어떻게 하면 스위스 같은 강소국(强小國)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과 열정이 가득하다.

[만물상] '행복한 나라'

▶이한빈은 "땅이 좁고 자원도 없는 나라가 살아남으려면 개인은 기술을 가져야 하고 나라는 수출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경제적 번영은 정치 안정을 전제로 해서만 가능하다"며 

직업적 정객 없이 각자 생업에 종사하며 공동체 미래를 위해 머리를 맞대는 스위스식 정치제도의 

장점을 열거했다. 

네 가지 언어와 민족이 공존하는 스위스 사회가 삐걱거릴 때면 어김없이 지식인들이 사회 통합을 위해 앞장선다고도 했다.

▶돌이켜 보면 1960년대 '같이 내일을 그리던' 이들이 두 사람뿐 아니었다. 

정부와 사회 각 분야, 국민 개개인이 나라를 일으켜 세우는 데 함께 나섰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세계가 놀랄 만한 발전을 이룩했다. 

본보기로 삼았던 나라들과 같은 '내일'이 손을 뻗치면 닿을 것 같은 날들이 우리에게도 있었다.

▶엊그제 유엔이 발표한 '2015 세계 행복 보고서'에서 세계 158개 나라 중 스위스가 가장 행복한 나라로 꼽혔다. 

아이슬란드와 덴마크가 2, 3위에 올랐다. 한국은 작년보다 6계단 내려간 47위에 자리했다. 

유엔은 해마다 국가 행복 순위를 발표하지만 올해 이를 받아보는 느낌은 여느 해와 다르다. 

꼭 순위가 내려갔대서가 아니다. 내일을 그리던 날이 어느덧 지난 날이 돼버린 것 같은 답답함 때문일까. 

국민 행복을 얘기하기 전에 그걸 가로막는 사회 곳곳의 적폐가 먼저 떠오르고 열정과 에너지가 소멸해 가는 것 같은 

걱정이 앞선다. 스위스는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선망의 나라인데 우리는 왜 잠깐 반짝하다가 이렇게 됐나. 

다 같이 내일을 그리는 희망의 불을 다시 지피고 싶다.




같이 내일을 그리던 어제- 이한빈·최정호의 왕복 서한집 

저자 : 이한빈, 최정호, 김형국 공저

발행일 : 2007년 01월 20일

페이지 : 248면  가격 : 2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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