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데스크에서] 公憤 없는 소비자들

바람아님 2016. 2. 3. 11:33

(출처-조선일보 2016.02.03 이인열 산업1부 차장)


이인열 산업1부 차장 사진"이번 사태는 간단치 않을걸요. 
거짓말을 워낙 싫어하는 미국이라서요."

미국에서 대학을 나온 회사 동료가 이렇게 전망했다. 
작년 9월 폴크스바겐이 디젤 차량의 배기가스를 조작했다는 사건이 불거진 직후였다. 
당시 일각에서 "차량 자체의 안전과 직접 관련된 결함은 아니지 않으냐"는 얘기까지 나돌면서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관심이 컸던 시점이었다. 
폴크스바겐 사태의 본질은 배기가스를 저감하는 장치를 달았지만 성능 실험을 받을 때만 작동하게 하고 
이후 소비자들이 몰고 다닐 때는 작동하지 않게 했다는 것이다. 
폴크스바겐이 당국과 소비자들을 상대로 '배기가스가 적은 친환경 차'라고 속인 것이다.

과연 미국 소비자들의 대응은 단호했다. 
배출가스 임의 조작 사실이 밝혀지기 전인 작년 8월 미국 시장에서 폴크스바겐의 디젤차 판매 실적은 8688대로 선두권이었었다. 
하지만 미국 환경청이 폴크스바겐의 불법 조작 사실을 발표한 9월에는 4205대로 반 토막이 났고 10월과 11월에 
각각 1879대, 201대로 급전직하했다. 
12월에는 월 100대 미만(76대)으로 곤두박질 쳤다.

응징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미 법무부는 폴크스바겐을 상대로 900억달러(약 108조원) 민사소송을 냈다. 
또 폴크스바겐은 미국에서 사기 혐의로 조사까지 받아야 한다. 
그러자 폴크스바겐은 마티아스 뮐러 회장이 직접 나와 미국 소비자들에게 몇 번이나 사과했다. 
고객 1인당 1000달러의 보상과 함께 문제의 차량은 모두 되사주겠다고도 했고, 테네시주(州)에 9억달러를 투자해 
공장도 짓겠다고 했다.

우리의 대응은 정반대다. 사태 발생 직후인 지난해 10월 폴크스바겐의 국내 디젤 모델 판매가 9% 반짝 
감소했지만 11월에는 1년 전보다 59% 늘었다. 그다음 달에도 18%의 성장세를 보이면서 작년 전체로 따지면 17%가 
늘어났다. 60개월 무이자 할부 판매 등 파상적인 할인 공세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할인 공세는 우리나라에서만 시행한 게 아니다. 
폴크스바겐은 100조원 이상의 소송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재고 물량 소진이란 특명을 내린 상태다. 
그래도 작년 일본과 중국에서도 각각 19%, 37%씩 판매가 줄었다. 
"폴크스바겐 조작 사건보다 더 충격적인 게 한국에서 폴크스바겐의 판매 급증"이란 말이 나올 만하다. 
시장에서 소비자의 판단은 존중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그래도 뒷맛은 여간 씁쓸한 게 아니다.

상황이 이러니 폴크스바겐은 한국 고객에게는 리콜 계획조차 밝히지 않았다가 최근 환경부로부터 형사 고발  까지 당하게 됐다. 
수입차 관계자는 "폴크스바겐 본사 입장에서는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한국 시장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데, 
굳이 리콜(시정 조치)이니 보상 등을 서두를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거짓말을 응징하지 않는 사회는 결국 대가를 치르게 된다. 
거짓을 일삼은 정치인 심판에 소홀한 결과 온갖 정치적 매연에 시달리는 우리 현실을 떠올리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