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04.27 김태익 논설위원)
"미비한 대로 '작은 나라가 사는 길:스위스의 경우' 원고를 보내드립니다.
자유롭게 코멘트와 가감(加減)을 해주십시오." 1965년 3월 10일 스위스 대사 이한빈은 신문사 베를린 특파원인 최정호에게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낸다. 이한빈은 최초의 스위스 주재 한국 대사였다.
'작은 나라가 사는 길…'은 한국인 시각에서 스위스의 발전 비결을 정리한 최초의 저서일 것이다.
당시 이한빈은 서른아홉, 최정호는 서른둘 나이였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50여통의 편지가 '같이 내일을 그리던 어제'라는 책에 수록돼 있다.
이한빈의 편지를 받은 최정호는 책 제목에 대한 의견을 보내고 바로잡아야 할 부분 등을 지적한다.
50년 전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 연간 수출액이 1억달러에 지나지 않았다.
편지에는 '작은 나라' 대한민국이 어떻게 하면 스위스 같은 강소국(强小國)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과 열정이 가득하다.
▶이한빈은 "땅이 좁고 자원도 없는 나라가 살아남으려면 개인은 기술을 가져야 하고 나라는 수출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경제적 번영은 정치 안정을 전제로 해서만 가능하다"며
직업적 정객 없이 각자 생업에 종사하며 공동체 미래를 위해 머리를 맞대는 스위스식 정치제도의
장점을 열거했다.
네 가지 언어와 민족이 공존하는 스위스 사회가 삐걱거릴 때면 어김없이 지식인들이 사회 통합을 위해 앞장선다고도 했다.
▶돌이켜 보면 1960년대 '같이 내일을 그리던' 이들이 두 사람뿐 아니었다.
정부와 사회 각 분야, 국민 개개인이 나라를 일으켜 세우는 데 함께 나섰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세계가 놀랄 만한 발전을 이룩했다.
본보기로 삼았던 나라들과 같은 '내일'이 손을 뻗치면 닿을 것 같은 날들이 우리에게도 있었다.
▶엊그제 유엔이 발표한 '2015 세계 행복 보고서'에서 세계 158개 나라 중 스위스가 가장 행복한 나라로 꼽혔다.
아이슬란드와 덴마크가 2, 3위에 올랐다. 한국은 작년보다 6계단 내려간 47위에 자리했다.
유엔은 해마다 국가 행복 순위를 발표하지만 올해 이를 받아보는 느낌은 여느 해와 다르다.
꼭 순위가 내려갔대서가 아니다. 내일을 그리던 날이 어느덧 지난 날이 돼버린 것 같은 답답함 때문일까.
국민 행복을 얘기하기 전에 그걸 가로막는 사회 곳곳의 적폐가 먼저 떠오르고 열정과 에너지가 소멸해 가는 것 같은
걱정이 앞선다. 스위스는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선망의 나라인데 우리는 왜 잠깐 반짝하다가 이렇게 됐나.
다 같이 내일을 그리는 희망의 불을 다시 지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