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123층 롯데월드타워는 박수 받을만하다

바람아님 2016. 2. 22. 00:17
[J플러스] 입력 2016.02.20 22:54
 
2014년 봄 고등학생 아들과 함께 한 홍콩·마카오 관광은 ‘마천루 탐방’이 돼버렸다. 홍콩 빅토리아 항 인근에 높이 솟은 빌딩에 매료된 아이는 마천루 전망대만 찾아 다녔다.

홍콩에서 가장 높은 118층(지상층) 짜리 ICC(국제상업센터)의 ‘스카이100’ 전망대를 비롯해 IFC·중국은행 타워의 전망대도 올랐다.

마카오에서도 마천루 투어는 계속됐다. 심지어 아이는 마카오 최고봉 ‘마카오 타워’에서 번지점프까지 감행했다. 보호장비를 차고 전망대 밖을 한 바퀴 도는 스카이워크와 세트인 번지점프 상품은 1인당 비용이 50만원이 넘었는데도 1시간 가까이 기다려야만 했다.


홍콩과 마카오가 초고층빌딩을 내세운 도시 마케팅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는 듯했다. 하기야 초고층빌딩이 부와 자존심의 상징인 듯 ‘높이 경쟁’을 벌이는 게 홍콩·마카오뿐이랴.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그리고 그 선두에 롯데월드타워가 있다.

555m, 123층의 이 빌딩이 예정대로 올해 12월 22일 완공되면 이는 한국에서 최고, 세계에선 여섯 번째로 높은 빌딩에 랭크된다. 

롯데에 따르면 롯데가 서울 잠실의 롯데월드타워 부지를 사들인 것은 서울시의 제안이 계기가 됐다. 88올림픽을 앞둔 서울시가 자금난을 해소하기 위해 1987년 서울시 소유의 롯데월드타워 부지를 팔려고 했고, 롯데가 이에 응했다. 당시 롯데는 2만6372평을 평당 330만원씩 주고 863억원에 샀다. 지난해 현대차그룹이 잠실에서 멀지 않은 삼성동 옛 한전 부지를 10조5500억원에 산 것에 비하면 헐값처럼 보이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대사처럼 88년 당시 강남 대치동 은마아파트 한 채에 5000만원쯤 했다. 863억원이면 은마아마트 1726채를 살 수 있었으니 당시로선 엄청난 금액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롯데의 초고층빌딩 사업은 우여곡절 끝에 사업승인을 받고 2010년 11월 착공했다. 당시 2조원 정도로 예상했던 건설비용(땅값 863억원 포함)은 해마다 불어나 4조원(공공기여금 1조3000억원 포함)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롯데가 투입된 비용을 단시간에 회수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롯데는 곧 타워 내 레지던스와 사무실의 사전 분양에 들어갈 예정이다. 레지던스의 경우 최고급으로 지어져 제일 싼 레지던스 한 채가 50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레지던스와 사무실을 모두 분양해도 회수되는 자금은 1조6000억원 정도로 건축비용의 40%에 불과하다. 한때 증권가에선 이처럼 예상을 뛰어넘는 건축비용이 롯데의 재무상태에 악영향을 줄 것이란 분석도 나왔다.


그런데도 롯데가 조금은 무모해 보였던 이번 사업을 강행한 것은 상당 부분 신격호 총괄회장의 고집 때문이었다. 롯데 관계자들에 따르면 신 총괄회장은 “살아생전 기념비적인 건물 하나를 남기고 싶다”는 소원을 자주 언급했다. 그리고 그 소원은 초고층빌딩으로 집약됐다. 초고층빌딩이 가진 상징성을 그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롯데월드타워는 신격호란 개인의 꿈이 현실화된 것이다.  


이런저런 비판도 많지만 나는 그의 꿈이 자랑스럽다. 허세, 자기 과시였을 수도 있지만 그의 무모한 꿈 덕분에 서울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자랑스러운 랜드마크를 가지게 됐다. 우리 아들이 그랬던 것처럼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의 상당수는 이곳에 들를 것이고,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그렇듯 사람들은 줄지어 전망대에 오를 것이다. 벌써부터 그런 조짐이 있다. 소문을 들은 중국· 동남아시아 관광객들은 다 짓지도 않은 이 빌딩을 보러 모여든다.

완공까지 남은 기간 롯데는 마무리 공사를 잘 했으면 좋겠다. 문제가 있다면 완공 시점을 늦춰서라도 바로잡고 갔으면 좋겠다. 이 빌딩이 우리의 얼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롯데월드타워에서 뺏은 면세점도 돌려줘야 한다. 외국 관광객들이 한국에 와 가장 먼저 찾을 랜드마크에 면세점 하나 없다는 게 말이나 되나. 6월이면 문을 닫는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은 주말이면 하루 10만 명의 쇼핑객들이 몰린다. 지난해 매출은 6112억원으로 국내 면세점 중 세번 째였고, 성장률은 1위(26.8%)였다.

롯데가(家) 형제들의 경영권 분쟁이 면세점 허가에 영향을 미쳤다면 더더욱 문제다. 그런 기준으로 경제적 결정을 내리는 나라가 온전한 나라일 리 없어서다.

잘한 건 화끈하게 칭찬하는 문화가 우리에게 부족하다고 생각해왔다. 그런 맥락에서 신격호 총괄회장에겐 화끈하게 큰 박수 보내고 싶다. 한국을 대표할 랜드마크 빌딩을 남겨줘서 고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