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닷컴 2016.03.09 선우정 논설위원)
미·중 갈등은 지면 아래에서만 꿈틀대지 않을 것이다
安保의 '오버슈팅'으로 남·동중국해 마그마까지 끌어올려선 안 된다
언어는 생각을 가두는 힘이 있다.
본지가 '한국전쟁'이란 말을 가급적 쓰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 배운 대로 6·25전쟁은 남북한의 내전(內戰)이 아니라 미·소·중·영·불 등
당시 강대국이 모두 달려들어 전후 냉전 질서를 규정한 세계사적 전쟁이다.
'한국전쟁' 용어는 생각을 지역 공간에 가둔다.
생각이 갇히면 본질을 못 보고 잘못된 교훈을 얻는다.
6·25가 국제전이 된 것은 강대국이 얽힌 한반도의 국제성 때문이다.
당시 북한 정권이야말로 이런 특성을 간과했다.
그러니 속전속결로 남한을 접수할 수 있다고 공언했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한국 외에 16개국을 상대해야 했다.
만주로 내몰리기 직전 중국을 끌어들이면서 비로소 자기 땅의 특성을 깨달았을지 모른다.
그들의 어리석은 실패는 우리에게도 큰 교훈을 남겼다. 한반도 운명은 누구의 의지만으로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다.
김정은의 폭정이 이 지경이면 당장 북한 지도부와 핵 기지를 공격하고 휴전선을 돌파해 동포를 구하는 게 옳다.
"우리 땅, 우리 동포인데 누가 가로막느냐"는 주장도 정당하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싸우는 게 겁나서가 아니다.
강대국 동의 없는 현상 변경은 강대국을 불러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현실이 그렇다.
정당성과 명분이 아무리 달라도 66년 전 북한의 어리석음을 누구든 반복해선 안 된다.
6·25 당시 동아시아의 화구(火口)는 한반도만이 아니었다. 대만을 향한 중공의 전면 침공이 초읽기 상황이었다.
일본은 미국 점령 종결 후 소련의 침공을 두려워했다.
'이념 갈등'이란 마그마가 대만이나 일본에서 분출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한반도 화구가 열렸다.
대만해협에 집결한 중국 병력이 압록강으로 이동했고 미국은 일본에 군수 기지를 세웠다.
우리는 폐허가 됐지만 대만은 살았고 일본은 번영했다.
강대국의 갈등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미·러 갈등은 이미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으로 분출했다.
미·중 갈등 역시 지면 아래에서만 꿈틀거리지 않을 것이다. 현재 동아시아의 화구는 남·동중국해, 한반도 등 세 곳이다.
몇 년 전 동중국해가 펄펄 끓었고, 요즘엔 남중국해가 뜨겁다.
북핵을 둘러싸고 한반도의 온도도 올라가는 중이다.
중국의 당면 목표는 남·동중국해 루트를 확보해 태평양에 진출하는 것이다.
여기서 일본과 베트남이 중국과 대립하고 있다.
이 나라들이 한반도 문제를 둘러싼 최근 미·중 갈등에 입을 다무는 침묵의 맥락을 읽어야 한다.
한반도의 갈등이 자기 앞바다로 확대될까 두려운 것이다. 그들이 그렇듯 우리도 그들에게 얽혀들어선 안 된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내부 논리에 집착하다가 남·동중국해에서 축적된 갈등 에너지를 한반도 화구로 한꺼번에
끌어올리는 것이다.
우리에게 미국은 '혈맹(血盟)'이다. 3만6574명의 미군이 한반도에서 목숨을 잃었다.
한국이 북한과의 군비(軍備) 경쟁을 피하고 오늘의 번영을 누릴 수 있는 것도 주한 미군 덕분이다.
빚을 갚으려면 멀었다. 하지만 갈등까지 대리할 수는 없다.
동맹의 한계는 어디일까. 우리는 한·미 동맹의 본질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
미국이 중·러와 상대하는 '아시아 동반자'로 규정한 나라는 일본이다.
한국의 위치는 시대에 따라 흔들렸지만 북한을 방어하는 '지역 동반자' 위치를 넘어선 일이 없다.
말하자면 일본의 배후지다. 일본 열도는 중·러의 동아시아 해상 루트를 동시에 봉쇄한다.
일본에 로켓 기술을 통째로 주고 플루토늄 생산·보유를 허가한 미국의 특혜는 이런 지정학적 가치에서 나온다.
따라서 아시아에서 미·중 갈등을 앞장서 대리해야 할 자격과 책임은 일본에 있다.
'오버슈팅(overshooting)'이란 금융 용어가 있다.
충격이 생겼을 때 금융시장 참여자들이 과하게 반응하는 현상을 말한다.
과민 반응은 점차 가라앉아 새로운 균형에 수렴한다.
시장은 이때 대목을 만난다. 상대의 오버슈팅에 벌떼처럼 달려들어 이익을 챙기는 것이다.
가장 오버하는 자가 가장 큰 손해를 본다.
안보의 오버슈팅은 손익뿐 아니라 생사(生死)까지 가를 수 있다는 점이 다르다.
어제 정부가 대북 제재를 발표했다. 개성공단 가동 중단을 포함해 할 수 있는 압박 수단을 다 동원했다.
강하게 이행하는 일만 남았다. 동시에 정부 대책 중 과민 반응한 부분이 없는지도 점검해야 한다.
겉으로 내세우지 않고 조용히 해야 할 중요한 과제도 선별해 밀고 나가야 한다.
한반도는 국제적 공간이다.
이런 나라의 지도자는 때론 교활함까지 필요하다.
그래야 활화산의 화구 노릇을 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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