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04/03/19 김철규·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세계체제, 동북아, 한반도/ 이수훈 지음/ 아르케/ 276쪽/ 1만5000원
330.911-ㅇ775ㅅ /[강서]종합서고/ [정독]인사자실(2동2층)
우리는 자본의 시대에 살고 있다.
세계화의 수사로 치장된 오늘날의 변화는, 사실은 국경을 초월하여 시장을 확장시키고
사회 관계를 상품화하는 과정이다. 일찍이 이러한 사회 변동에 주목하여,
풍성한 연구 성과를 낳은 분야가 바로 세계체제론이다.
미국의 역사사회학자 이매뉴얼 월러스타인에 의해 주도된 세계체제론은
1980년대 이후 주류 사회과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세계체제론의 도발성은 기존
사회과학에 대한 두 가지 비판 지점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 하나는 분석 단위로 국가를 상정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고,
다른 하나는 분과 학문화를 통해 몰(沒)역사적 분석에 매몰되는 것에 대한 비판이다.
세계체제론은 IMF 위기로 세계 자본의 위력을 실감한 우리 사회에서 더 큰 설명력을 가질 수 있다.
이 책의 저자 이수훈 교수는 한국의 대표적인 세계체제론자다.
그동안 이 교수는 많은 저작들을 통해 세계체제론이 지닌 학문적·정치적 잠재력에 대해 역설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전도사’적 역할 때문에 세계체제론을 적극 활용한 한국 사회 분석이 미진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한반도 발전의 구체적인 문제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고민한 ‘세계체제, 동북아, 한반도’는 한 단계 더 나아간
이 교수의 학문적 성취를 보여준다.
4개의 글로 구성된 제1부는 세계체제를 중심에 두고 한국 자본주의의 위기와 대응에 대해 다루고 있다.
IMF 처방, 반(反)국가주의, 반(半)주변부적 국가 발전 등 각기 다른 세부 주제들을 다루고 있지만,
글들은 모두 두 가지 전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첫째, 세계 자본주의 전체로 볼 때 국가 발전은 제로섬 게임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입장은 발전의 강박 관념에 시달려 온
우리에게 객관적인 시각에서 한국의 경제 성장과 IMF 위기를 바라볼 수 있게 해 준다.
둘째, 현 시대를 미국 헤게모니의 쇠퇴 국면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헤게모니 유지를 위해서는 ‘정당성’ 확보가 중요한데,
지금 미국은 정당성 위기를 군사력을 통해 넘기며 힘겹게 세계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시아는 중국의 등장으로 변화의 기로에 놓여 있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정상회담에 참석한 원자바오 중국 총리, 노무현 한국 대통령,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손을 모아 잡고 포즈를 취한 모습. (조선일보 DB사진) |
제2부의 글들은 한국 사회가 맞닥뜨린 여러 도전에 어떻게 응전할 것인가를 다루고 있다.
이를 위해 이 교수는 ‘동북아시아’라는 새로운 공간 개념의 근거 확보를 위해 노력한다.
그는 동북아시아를 ‘동아시아’가 담고 있는 미국 중심적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선 개념으로 보고 있다.
동북아시아는 미국 헤게모니 체제의 쇠퇴와 중국의 등장이라는 세계사적 변화를 담아내며, 한국 발전 전략의 기본 방향을
제시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얼핏 엉뚱해 보이는 이러한 해석은 사실은 세계체제론의 입장에서 매우 논리적이다.
동북아시아 개념은 또한 남북 문제 담론을 재구성하는 데도 적극 활용된다.
‘통일’이나 ‘대북 정책’이 아니라 ‘평화·공동 번영’과 같은 세계사적인 담론으로 전환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고 주장한다.
동북아 협력의 증대 경향 속에서 이러한 전환은 그 어느 때보다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기존 사회과학의 틀에서 자유롭다.
그 자유로움을 바탕으로 한반도 주변 지정학의 역동성을 민감하게 포착하고 있다.
특히 세계 권력 중심의 이행이라는 거시적 변화를 한국의 정치경제적 과제와 연결시켜 분석하는 과정은
높은 논리적 완결성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 부분은 대안의 핵심으로 제시되는 ‘한반도 중도(中道) 공동체론’이다.
중도 공동체는 규범적 주장에 머물고 있어, ‘중기적인 비전’이나 ‘구체적 발전 전략’으로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 교수의 왕성한 연구력을 고려할 때, 이어지는 작업에서는 보다 구체적인 발전 전략을 만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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