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2016.03.22. 17:35
“장날이 맏아들보다 낫다.” 물품이 넉넉하지 않던 시절에 많은 것을 구할 수 있었던 잔칫날인 장날 속담이다. “아버지는 나귀 타고 장에 가시고… 고추 먹고 맴맴….” 노래하며 저녁 무렵 장에 가신 아버지를 기다리는 모습을 지금은 볼 수 없지만 요즘도 재래시장에 가면 대형마트와는 다른 정과 삶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장볼 거리 외에도 맛집, 미용실, 지물포 등 없는 것이 없다고 할 만큼 다양해 구경하는 재미가 두 배다.
때가 때이니 만큼 시장으로 들어서는 통로에는 봄나물 만물상이라 해도 좋을 만큼 좌판이 펼쳐져 있다. 몸 안 가득 봄향기를 채워줄 봄나물은 보고만 있어도 정겹고 건강해지는 기분이다. 좋은 자리 차지하려고 아침도 거르고 나오셨다는 할머니는 아무도 돌보지 않는 척박한 노지에서 난 여러 가지 파릇파릇한 봄나물을 손수 다듬어 빨간 플라스틱 소쿠리마다 듬뿍 쌓아 놓고 찾는 이마다 싼 값에 주섬주섬 한 봉지씩 담아주신다. 강인한 생명력으로 언 땅을 뚫고 추위에 막 얼굴을 내민, 신이 내린 선물이라는 약선나물을 심지도 거두지도 않고 수고도 없이 솔솔 뿜어내는 봄향기로 입이 호강할 일에 참 고맙고 감사하다.
계절마다 오염되지 않은 먹거리가 지천으로 돋아나 사방에 풍성하다. 자연에서 나온 먹거리로 불치병을 고친 기적을 이룬 사람의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으니, 인체가 자연의 이치와 순리에 맞는 생활을 하게 되어 있어 자연에서 나온 먹거리를 통해 건강을 찾는 것이 기적이 아니라 ‘자연 치유’가 자연스러운 일은 아닐는지. 오히려 각종 공해와 만성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도 해롭다는 것을 끊임없이 먹고 마시며 건강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품는 것이 기적 아닐까.
만물이 생동하는 봄기운을 빨아올리며 언 몸을 치유하고 가지를 뻗친다. 어느 시인은 화창한 봄날에 피어나는 모든 꽃은 겨울을 사랑했던 눈물이고 향기라 했다. 생명이 순환하고 발화하는 봄. 겨울을 품지 않은 꽃이 없으니 겨울을 이겨낸 사람에게도 꽃은 피어나리.
김세원(에세이스트)
'人文,社會科學 > 敎養·提言.思考'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윤세영의 따뜻한 동행]마음 읽기 (0) | 2016.03.25 |
---|---|
[황종택의新온고지신] 매한불매향(梅寒不賣香) (0) | 2016.03.23 |
[연구] 키스할 때 눈 감는 이유 밝혀졌다 (0) | 2016.03.21 |
[2030 잠금해] 사람 하기 나름이다 / 희정 (0) | 2016.03.21 |
[강정의 길 위의 이야기] 잘못 온 편지 (0) | 2016.03.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