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북송 때의 문인 임화정은 서호(西湖)의 고산(孤山)에 은거하면서 평생 벼슬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뜰에 매화나무를 심고 학과 함께 살았으므로 사람들은 그를 ‘매처학자(梅妻鶴子)’라고 불렀다. 매화가 필 때쯤 되면 한 달이나 문 밖을 나가지 않고 종일 매화를 감상하고 노래를 부르며 혼자 즐겁게 지냈다. 그의 시 ‘산원소매(山園小梅)’를 감상해 보자.

“온갖 꽃들이 시들어 떨어져도 홀로 아름답게 남아(衆芳搖落獨暄姸)/ 작은 정원의 정취를 독차지하고 있네.(占盡風情向小園)/ 성긴 매화나무 그림자는 비스듬히 맑은 물 위에 드러나고(疏影橫斜水淸淺)/ 그윽한 매화 향기는 몽롱한 달빛 속에 감도네.(暗香浮動月黃昏)”
조선시대 지식인들도 매화를 가까이 했다. 매화를 일컫는 말로 ‘빙설옥질(氷雪玉質)’, ‘빙기옥골(氷肌玉骨)’이 있다. 얼음과 눈처럼 맑고 깨끗한 모습에, 옥같이 곧고 맑은 정신을 말한다. 선현 중 이퇴계는 매화를 소재로 107수의 시를 지었을 정도로 매화에 빠졌다. 임종 때엔 단양의 기생 두향으로부터 선물받은 청매화를 가리켜 “저 매화에 물을 주라”는 유언까지 남겼다고 한다.
특히 퇴계는 ‘매한불매향(梅寒不賣香)’이란 말을 좌우명으로 삼았다. ‘매화는 춥더라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뜻으로 선비의 올곧은 기개를 상징한다. 그의 시 가운데 “뜰앞에 매화나무 가지 가득 눈꽃 피니, 풍진의 세상살이 꿈마저 어지럽네. 옥당에 홀로 앉아 봄밤의 달을 마주하노라(一樹庭梅雪滿枝 風塵湖海夢差池 玉堂坐對春宵月)”엔 선비정신이 배어 있음을 본다. 요즘 매화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고결한 선비가 그립다.
황종택 녹명문화연구원장
梅 매화 매, 寒 찰 한, 不 아닐 불, 賣 팔 매, 香 향기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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