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닷컴 2016.04.04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우리가 가장 행복 느끼는 두가지 행위는 먹기와 말하기
함께 먹을 때 즐거움 증폭
나눠 먹는 행위는 배고픔의 위협 극복해온 진화론적인 보험이기도
온통 먹는 얘기다.
2002년 월드컵 하면 빨간색이 떠오르듯, 요새 TV 채널들은 곧바로 음식을 연상시킨다.
예전에는 방송에서 숨은 골목 맛집을 소개하는 정도였다.
지금은 냉장고 뒤에서 형체가 불분명해져 가는 재료들을 모아 요리 만드는 시합도 하고,
유명 셰프의 수다를 들으며 유럽의 음식점도 탐방한다. 혹시 외계인이 요즘 한국의 TV 방송을
모니터링한다면, 지구인은 먹기 위해 산다는 확고한 결론을 내릴 것이다.
인간은 먹는 것에 왜 이토록 열광을 할까?
한마디로 음식을 먹을 때 뇌에서 강렬한 쾌감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너무 당연한 말인 것 같지만, 먹는 행위의 본질은 쾌감이라는 경험에서 비롯된다.
광합성을 하는 식물과 달리, 동물은 외부에서 영양분을 지속적으로 섭취해야 한다.
동물이 이 먹기 행위를 꾸준히 하도록 하기 위해 자연이 고안한 기발한 장치가 바로 쾌감이다.
왜 한우 등심이나 과일을 먹으려는 사람은 주변에 많은데, 돌이나 핸드폰을 삶아 먹는 사람은 찾을 수 없을까?
몸의 유익을 고려해 뇌는 쾌감이라는 보상을 선별적으로 켜주기 때문이다.
고기와 같은 필요한 영양분이 담긴 것을 먹을 때 쾌감 전구를 켜 주지만('맛있다'라고 우리는 표현한다),
돌을 먹을 때는 쾌는 없고 이만 부러진다. 돌을 만지며 식탐을 느꼈던 자들은 뇌의 중요 장치가 고장 났다는 뜻이고,
이런 자들은 진화의 그물망에 걸려 살아남지 못했다.
그런데 이 쾌감(즐거움)은 행복의 핵심 요소이기도 하다.
실제로 한국인의 행복을 조사해 보면, 일상에서 가장 높은 행복감을 느끼는 행위는 두 가지다. 먹기와 말하기.
쾌와 행복은 이처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런데도 막상 먹기 위해 인생을 산다고 생각하면 뭔가 불편하고
허망할 때가 있다. 행복이라는 단어보다는 오히려 동물 한 마리가 생각난다. 돼지.
이 대목에서 우리 생각에 돼지를 주입시킨 대표적인 사람은 공리주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이다.
배부른(만족한) 돼지보다는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되라는 그의 사감 선생님 같은 말씀.
하지만 밀의 배부른 돼지 비유의 핵심 포인트는 먹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자기중심적 탐욕에 대한 경계였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것이, 최근 연구에 의하면 배고픔은 인간의 소유욕을 전반적으로 높인다고 한다.
배가 고프면 먹을 수 없는 것들까지도 더 많이 가지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먹는 행위는 야생의 동물과 큰 차이점이 하나 있다.
인간은 다른 인간과 매우 적극적으로 음식을 나누어 먹었고, 같이 먹을 때 즐거움이 증폭됐다.
지금도 동양에서는 잔치를, 서양에서는 축제를 하는 주목적은 음식을 같이 먹기 위함이다.
우리가 이렇게 훈훈하게 음식을 나누어 먹은 것은 진화론적 이유가 있다.
배고픔은 인간이 늘 시달렸던 문제였고 이 고질적 위협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보험을 들어 놓을 필요가 있었다.
내가 음식을 나누어 주었던 친구가 어려울 때 내게 음식을 줄 확률이 높은 것이다.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고 소소한 즐거움의 합이다.
한국의 탁월한 음식 문화 덕분에 우리는 먹는 즐거움을 한껏 누릴 수 있는 혜택을 받은 자들이다.
밋밋한 평양냉면의 맛을 한국 사람이 아니면 어찌 이해하겠는가.
냉면을 먹으며 내가 한국인임을 감사할 때가 있다.
먹는 즐거움은 생물학적으로 설계된 선물이다.
혼자 먹으려는 것이 문제이지 먹는 즐거움 자체는 문제가 될 것이 없다.
행복은 우리만큼 쾌락의 귀천을 따지지 않는다.
※ 현대인에게 행복이 갖는 의미를 사회 이슈와 곁들여 쉽고 재미있게 분석하는 '행복산책'을 새로 연재합니다. 집필은 서은국 교수가 맡습니다. 연세대 졸. 일리노이대 박사. UC어바인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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