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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리앙의 서울일기 ④ 안티 스트레스 요법

바람아님 2016. 4. 4. 00:09
[중앙일보] 입력 2016.03.12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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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리앙 스위스 철학자


나를 항상 웃게 만드는 글이 있다. 몽테뉴의 『수상록』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 옛날 위대한 인물 이솝은, 주인이 느긋하게 거닐다 말고 오줌을 누는 것을 보며 말했다. ‘뭐야, 그럼 우린 뛰어다니면서 똥을 누어야 하나?’”

우리가 처음 서울에 안착한 날을 나는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이 거대한 도시 앞에서 느낀 경이로움이란! 그 후 몇 주일, 나는 마치 동화 속 보물이라도 찾는 탐험가처럼 도시의 이곳저곳을 정처 없이 헤집고 다녔다. 지금도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종종 보물찾기에 나선다. 아무 지하철이나 잡아탄 뒤 아무 숫자나 골라 그 번호에 해당하는 역에서 내리는 것이다. 그러면 놀랍고도 멋진 만남과 모험이 우리를 기다린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내 귀에 처음 들려온 한국말은 “빨리빨리”였다. 처음 수퍼마켓에 갔을 때는, 내가 귀가하기도 전 집에 배달돼 있는 물건을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우리가 사는 사회의 질병은 과욕과 과로의 분주함에서 온다. 거머쥐고자 하는 목표가 많을수록 편안함은 훼손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매사 심각하게 생각하는 태도에서 조금 벗어날 필요가 있다. 스트레스조차 너무 해롭고 위험한 것으로 경계하다 보면 오히려 더 가중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현실에 대한 중압감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 결코 아니다. 만사를 막연히 걱정하기보다는 눈앞의 일상에서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작은 것들을 돌아보는 것이 해법이다.

도겐선사(道元禪師)의 『정법안장(正法眼藏)』은 내면의 소요 상태에서 벗어나 다른 방식의 삶을 가능케 하는 강력한 처방들로 가득하다. 오늘 그 가르침에 귀 기울여 보는 것은 어떤가.

먼저 욕망 자체를 줄여보는 것이다. 소비 욕구가 끝이 없다 보니 쇼핑이 지속 가능한 만족을 가져다줄 리 없음을 우리는 종종 실감한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 걸어가는 행복의 길은 바로 그런 깨달음에 닿아 있다. 그들은 욕망이 낳은 에고이즘과 환상, 자만과 사심에서 자유롭다.

도겐선사는 또한 자족(自足)하라고 가르친다. 그저 팔자소관이니 단념하라는 뜻이 아니다. 매일 자기 앞에 놓인 삶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라는 의미다. 많고 적음을 떠나 일용할 양식을 취하고, 추위에 떨지 않으며, 화려하진 않더라도 사지를 움직여 생활할 수 있음은 얼마나 큰 행운인가!

나는 도겐선사의 글을 읽을 때마다 엄청난 평화와 함께 오늘을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특히 ‘홀로 있음’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는 가르침에서 그렇다. 단 며칠만이라도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끊고 기도와 묵상을 시도해보는 것은 어떤가. 과도한 활동과 표피적인 삶을 떠나보는 것은 어떤가. 여기에 남을 향한 배려와 애정을 더하면 에고이즘으로 인한 스트레스 따윈 깨끗이 날려버릴 수 있다.

하루 중 일부라도 이웃 누군가를 위해 사심 없이 헌신하는 것만큼 정신건강에 탁월한 요법이 없다. 문제는 한번 먹은 마음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선한 의지도 일상에 뿌리내리려면 꾸준하게 영양을 공급해줄 필요가 있다. 묵상이나 기도를 통한 영적 수행은 내면에 안정을 가져다주고 정신력을 최고의 컨디션으로 유지시켜줌으로써 그와 같은 영양 공급을 이룬다.

끝으로 『정법안장』 마지막 권인 제95권은 부질없는 말을 자제하라고 가르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하루는 내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하는 얘기의 95%는 쓸데없는 잡담에 지나지 않아. 영혼 깊은 곳에서 퍼 올리지 않은 말들, 그것은 ‘정신이 뀌는 방귀’일 뿐이지!” 매일 아침 하루를 시작하면서 가슴속에 결연한 의지를 다져보자. 이제 꼭두각시놀음은 그만두고 매 순간 새로 태어나는 마음가짐으로 이 소중한 날을 살자고.

졸리앙 스위스 철학자/번역 성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