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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야기] 놀리고 장난치기만 했는데… 그녀가 내 마음을 알까?

바람아님 2016. 3. 31. 07:33

[철학이야기] 놀리고 장난치기만 했는데… 그녀가 내 마음을 알까?


(출처-조선일보 2016.03.31)

[마음의 표현 '기호학(記號學)']


드러내고 싶은 속마음 '기의(記意)'와 겉으로 나타내는 '기표(記標)' 합해 '기호(記號)'

반대로 표현하면 상대방 오해해… 자신의 진심 잘 알 수 있도록 정확한 기호 사용할 줄 알아야

여러분은 친하게 지내고 싶은 친구가 있으면 어떻게 행동하세요? 
먼저 말을 걸거나 친절하게 대하면 사귈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거예요. 함께 놀자고 할 수도 있고 집으로 초대할 수도 있지요. 
그런데 여학생에게 관심이 있는 남학생들은 이런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마음속으로는 그 여학생과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실제 행동에서는 거꾸로 짓궂게 할 수 있지요. 
지나가면서 괜히 툭 친다거나, "너 왜 이렇게 못생겼니?" 하면서 놀리기도 해요. 
심하면 놀이를 방해해서 여학생을 울게 만들 수도 있지요. 
마음속으로는 좋아하면서도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관심 있는 여학생과 친하게 지낼 기회를 잃고 
사이가 나빠지게 되고 말아요. 
이와는 정반대의 경우도 있어요. 별로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이 없는 친구라서 퉁명스럽게 대했는데 오히려 
그런 퉁명스러운 태도가 친구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수도 있어요. 
이런 경우는 참 난처해요. "나 너랑 친하게 지내기 싫어!"라고 말하자니 친구가 마음의 상처를 받을까 봐 미안하고 
그냥 지내자니 자신의 마음이 편하지가 않지요.

우리는 매일 기호학을 사용해요

논리학자들은 우리가 전하고 싶어 하는 마음기의(記意·드러내고자 하는 의도)라고 하고 
그 마음을 표현한 행동을 기표(記標·겉으로 드러난 표시)라고 설명해요. 
기의(記意)란 우리 각자의 마음을 뜻하기 때문에 그것이 표현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은 알 수가 없어요. 
우리 마음속에 있는 기의(記意)기표(記標)라는 수단을 통해 비로소 겉으로 드러나요. 
다른 사람들은 그 기표를 보고 그 안에 담긴 마음(기의)이 무엇일까 짐작하게 되지요. 
친구와 사귀고 싶다는 마음과 사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은 모두 기의예요. 
먼저 같이 놀자고 하는 행동, 여학생에게 짓궂게 구는 행동, 친구에게 퉁명스럽게 구는 행동들은 모두 기표예요. 
그리고 기의와 기표를 합해서 기호(記號)라고 해요. 기호학이란 바로 이 기호를 연구하는 학문이지요.
▲ /그림=정서용
[철학이야기] 놀리고 장난치기만 했는데… 그녀가 내 마음을 알까?기호학은 멀리 있지 않아요. 
지금 여러분이 읽고 있는 
이 글도 기호로 되어 있어요. 
문장 말미에 찍는 마침표는 
문장이 끝났다는 것을 뜻하는 기호예요. 
물음표는 질문을 던진다는 것을 
뜻하는 기호겠죠? 문장을 마치겠다는 
마음(기의)과 질문을 던지겠다는 
마음(기의)이 마침표와 물음표라는 
수단(기표)을 통해 표현되는 것이죠. 
우리가 마침표와 물음표를 보고 
그 뜻을 알아차리는 것은 우리 모두가 
문장부호 약속에 동의했기 때문이에요.

문장부호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는 
기호가 매우 많아요. 어쩌면 우리가 
사는 세상 전부가 기호로 이뤄져 
있을지도 몰라요. 
신호등도 기호예요. '
빨간불'과 '파란불'이라는 기표에는 
각각 '건너지 마시오'와 '건너도 좋아요'라는 
기의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배워서 잘 알고 있지요. 
빨간색 불이 켜져 있으면 건너지 말아야 하고 초록색 불이 켜져 있을 때만 건널 수 있다는 약속을 지킨다면 
사고 없이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을 거예요.

기표에는 다양한 뜻 담길 수 있어요

신호등처럼 하나의 기표가 하나의 기의만 정확하게 담고 있을 경우, 우리는 그 기호를 이해하는 것이 어렵지 않아요. 
그러나 기표에 담긴 기의가 여러 가지이거나, 혹은 하나의 기표에 서로 반대되는 기의가 담겨 있는 경우가 있어요. 
이런 경우에는 기표에 담긴 기의를 알아채기가 무척 힘들어요. 
강아지은 반가울 때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요. 
꼬리를 흔드는 것은 기표이고 그 기의는 반가움이에요. 
반면 고양이은 상대를 두려워하거나 기분이 나쁠 때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요. 
고양이들 입장에서는 꼬리를 흔드는 기표 속 기의는 두려움과 기분 나쁨이지요. 
그렇다면 고양이와 강아지가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고양이는 강아지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들어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는데, 
강아지는 그것을 보고 고양이가 자기를 반가워하는 줄 착각하게 돼요. 
그래서 강아지는 고양이에게 스스럼없이 달려들지요. 
고양이는 더욱더 두려운 마음이 들어 강아지를 할퀴게 될지도 몰라요. 
하나의 기표인데도 사람마다 성격 차이나 성장 배경, 출신 국가 등에 따라 서로 반대되는 기의가 담길 수 있어요. 
그래서 기표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어려워요. 
앞에서 예를 든 짓궂은 남학생의 행동이 바로 이런 경우에 해당되지요.

우리는 자신의 기의를 정확한 기표로 표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해요. 
짓궂은 행동을 하기보다는 상대방이 자신의 진심을 잘 알 수 있도록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 더 좋아요. 
자신의 기의를 기표로 표현할 경우엔 상대방이 다른 뜻으로 착각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게 좋아요. 
신호를 받는 입장도 마찬가지예요. 상대가 보내는 기표를 보고 그 안에 담긴 기의를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상대의 입장에 서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게 현명해요. 
기호를 주고받을 때 서로를 배려한다면 이 세상엔 오해에 따른 다툼은 훨씬 줄어들 거예요.


세계적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

 /조선일보 DB

[세계적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


지난 2월 19일 세상을 떠난 움베르토 에코기호학을 체계화한 이론가이면서 

동시에 기호학을 도입해 소설을 쓴 작가로도 유명해요. 

전 세계적으로 1000만부 이상 판매된 그의 저서 '장미의 이름'이 대표적인 작품이에요. 

유럽 중세 시대 수도원에서 벌어지는 잇단 살인 사건의 범인을 추리하기 위해 

에코가 제시한 수많은 기표 안에 담긴 기의를 철학, 역사, 문학 등 다방면의 지식을 

총동원해서 고민해야 하지요. 에코의 또 다른 소설 '푸코의 진자'에도 

기호학이 들어가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