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 2016.04.12 03:00
일본엔 4월에 다이어리를 새로 사는 사람이 많다. 일본인 친구가 "뭐든지 4월에 새로 시작하는 게 많으니까 여기선 4월이 희망의 계절"이라고 했다. 신입 사원도 4월에 뽑고 신입생도 4월에 입학한다. 그래서 3월 마지막 날 55세 싱글맘이 마이니치신문에 보낸 짤막한 글이 더 사람들 가슴을 아리게 했다. 작년에 대학 들어간 딸이 올해 4월 새 학년이 되는 대신 학교에서 잘렸다는 내용이었다. 돈이 없어서였다.
'등록금 11만5000엔(약 120만원)을 못 내서 딸이 대학에서 제적됐습니다. 몇 년 전 저는 10년 넘게 정사원으로 다니던 회사를 가족 간병을 위해 그만뒀습니다. 당시 고교생이던 딸은 졸업 후 2년간 아르바이트해서 지난해 겨우 대학에 갔습니다. 그 직후 제가 회사에서 임의로 해고당했습니다.(…) 우리 모녀는 둘이서 필사적으로 살아왔습니다. 비정규직 한 부모 가정인 저희가 처한 상황은 지금 정책을 짜는 사람들이 서민의 현실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걸 보여줍니다.'
이 글 속엔 지금 일본 사회가 처한 숙제가 압축돼 있다. 고령화로 간병 부담이 커졌다. 정규직은 줄고 비정규직이 늘어났다. 한때 일본에선 '1억 총 중류'란 말이 유행했다. 전 국민이 중산층이란 의미였다. 지금은 '하류 노인' '간병 이직' '격차 사회' 같은 말이 '1억 총 중류'를 대체한 지 오래다.
많은 사람이 55세 엄마의 글을 인터넷에 퍼 날랐다. 반응은 갈렸다. 다수는 "이 사람의 짐을 나눠서 지지 않는 나라가 잘못됐다"고 했다. 하지만 적잖은 사람이 가시 돋친 목소리를 냈다. "당신만 힘드냐" "학자금 대출이라도 받지 그랬냐" "어째서 자기 짐을 자기가 지지 않고 나라에 미루려 드느냐"는 투였다.
이런 일이 있을 때 일본의 주류 미디어와 정부는 "나라가 책임져야 한다"는 쪽에 선다. 차라리 침묵하면 했지 "정부가 어떻게 다 책임지느냐?"고 여론과 맞짱 뜨지 않는다. 두 달 전 젊은 주부가 "보육원 떨어졌다. 일본 죽어라! 보육원 늘리지 않으려면 아동수당 20만엔 달라"는 글을 블로그에 띄운 적이 있다. 그때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별일 아니라고 뭉개려다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자민당은 그 뒤 인터넷 여론 전담 부서를 신설했다.
문제는, 정부와 미디어가 고개를 숙인다고 "나라에 복지 부담 지우지 마라"는 목소리 자체가 사라지진 않더라는 점이다. 이런 목소리는 수면 밑에 잠복했다가 불시에 다시 갈등을 일으킨다. 야마다 히로시(山田宏) 전 중의원 의원이 최근 자민당 행사에서 보육원 블로그를 거론하며 "'낳은 것은 당신'이라고 말하고 싶다"고 한 일이 대표적이다. 논란이 일자 여당 관계자가 "정부·여당의 방침에 따라 발언하라"고 야마다를 나무랐다. 그래도 수백명이 야마다의 페이스북에 '좋아요'를 눌렀다.
앞으로도 일본에서 이런 갈등은 늘어나면 늘어나지 줄어들 것 같지 않다. 장기 불황을 거친 일본 사회는 정부가 아무리 돈을 풀어도 옛날처럼 시원하게 경제에 발동이 걸리지 않는다. 그런데도 복지 수요는 계속해서 높아진다. 나라는 힘이 빠졌는데 돈 쓸 일은 자꾸만 늘어나는 것이다. 우리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일본은 그래도 많이 벌어서 쟁여놓고 나서 엔진이 식었다는 점이다.
'등록금 11만5000엔(약 120만원)을 못 내서 딸이 대학에서 제적됐습니다. 몇 년 전 저는 10년 넘게 정사원으로 다니던 회사를 가족 간병을 위해 그만뒀습니다. 당시 고교생이던 딸은 졸업 후 2년간 아르바이트해서 지난해 겨우 대학에 갔습니다. 그 직후 제가 회사에서 임의로 해고당했습니다.(…) 우리 모녀는 둘이서 필사적으로 살아왔습니다. 비정규직 한 부모 가정인 저희가 처한 상황은 지금 정책을 짜는 사람들이 서민의 현실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걸 보여줍니다.'
이 글 속엔 지금 일본 사회가 처한 숙제가 압축돼 있다. 고령화로 간병 부담이 커졌다. 정규직은 줄고 비정규직이 늘어났다. 한때 일본에선 '1억 총 중류'란 말이 유행했다. 전 국민이 중산층이란 의미였다. 지금은 '하류 노인' '간병 이직' '격차 사회' 같은 말이 '1억 총 중류'를 대체한 지 오래다.
많은 사람이 55세 엄마의 글을 인터넷에 퍼 날랐다. 반응은 갈렸다. 다수는 "이 사람의 짐을 나눠서 지지 않는 나라가 잘못됐다"고 했다. 하지만 적잖은 사람이 가시 돋친 목소리를 냈다. "당신만 힘드냐" "학자금 대출이라도 받지 그랬냐" "어째서 자기 짐을 자기가 지지 않고 나라에 미루려 드느냐"는 투였다.
이런 일이 있을 때 일본의 주류 미디어와 정부는 "나라가 책임져야 한다"는 쪽에 선다. 차라리 침묵하면 했지 "정부가 어떻게 다 책임지느냐?"고 여론과 맞짱 뜨지 않는다. 두 달 전 젊은 주부가 "보육원 떨어졌다. 일본 죽어라! 보육원 늘리지 않으려면 아동수당 20만엔 달라"는 글을 블로그에 띄운 적이 있다. 그때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별일 아니라고 뭉개려다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자민당은 그 뒤 인터넷 여론 전담 부서를 신설했다.
문제는, 정부와 미디어가 고개를 숙인다고 "나라에 복지 부담 지우지 마라"는 목소리 자체가 사라지진 않더라는 점이다. 이런 목소리는 수면 밑에 잠복했다가 불시에 다시 갈등을 일으킨다. 야마다 히로시(山田宏) 전 중의원 의원이 최근 자민당 행사에서 보육원 블로그를 거론하며 "'낳은 것은 당신'이라고 말하고 싶다"고 한 일이 대표적이다. 논란이 일자 여당 관계자가 "정부·여당의 방침에 따라 발언하라"고 야마다를 나무랐다. 그래도 수백명이 야마다의 페이스북에 '좋아요'를 눌렀다.
앞으로도 일본에서 이런 갈등은 늘어나면 늘어나지 줄어들 것 같지 않다. 장기 불황을 거친 일본 사회는 정부가 아무리 돈을 풀어도 옛날처럼 시원하게 경제에 발동이 걸리지 않는다. 그런데도 복지 수요는 계속해서 높아진다. 나라는 힘이 빠졌는데 돈 쓸 일은 자꾸만 늘어나는 것이다. 우리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일본은 그래도 많이 벌어서 쟁여놓고 나서 엔진이 식었다는 점이다.
'時事論壇 > 日本消息'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선인이 우물에 독 풀었다"…일본 구마모토 지진 후, 혐한 악성 루머 확산 (0) | 2016.04.16 |
---|---|
일본 강진, 한국서도 감지..영남·제주서 "건물 흔들렸다" (0) | 2016.04.15 |
2천500조원 푼 日경제..IMF "내년 마이너스 성장 전망" (0) | 2016.04.13 |
日 마이너스 금리 '반작용'..금고·고액권 수요 '쑥쑥' (0) | 2016.04.12 |
日10대, 韓美中 흐릿한 인식..절반 "세 나라 모두 좋지도 싫지도 않아" (0) | 2016.04.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