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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기관에 있는 한국문화재.. 제대로 대접 못받고 '타국살이'

바람아님 2016. 4. 19. 00:21
세계일보 2016.04.17. 20:54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해외 기관에 있는 한국 문화재 실태조사 결과를 묶어 최근 10권의 보고서로 발간했다. 미국, 영국, 러시아, 중국, 일본 5개국 10개 기관의 3600여건 8400여점을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조사했다. 조사를 거친 국외 문화재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국외 문화재의 가치, 소장 기관의 인식 수준, 보관 상태 등을 파악할 수 있다. 대체불가의 희귀성에 놀라게 되고, 우리 문화재에 대한 저조한 인식에 실망할 수 있다. 국외 문화재 보존에 대한 우리의 관심 부족이 아쉬운 대목도 눈에 띈다.

중국 상하이도서관에서 발견된 59권 완질의 ‘자치통감강목’. 장서인을 통해 수백년간 한국-일본-중국으로 이동했었던 과정을 파악할 수 있어 가치가 특별하다.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대체불가의 희귀성

국외 문화재의 가치는 국내 문화재로는 충족할 수 없는 희귀성을 가질 때 더욱 두드러진다. 뛰어난 가치를 가졌지만 우리 손에 없다는 사실 때문에 아쉽고, 애타는 심정이 클 수밖에 없다.

재단은 2014년 10월 중국 상하이도서관 소장 한국 전적을 조사하면서 1420년(세종 2년)에 만든 동활자인 ‘경자자(庚子字)’ 판본의 역사서 ‘자치통감강목’(전 59권)을 발견했다. 자치통감강목 자체는 국내에서도 흔한 자료지만 상하이도서관 소장본은 일부만 남아 있는 국내의 것과 달리 59권 완질로 남아 있는 점에서 큰 가치를 가졌다.


무엇보다 책에 찍힌 ‘장서인’을 통해 이동경로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 주목됐다. ‘經筵(경연·임금이 학문을 배우고 신하들과 정치현안을 협의하던 일)’, ‘安平之記(안평지기)’, ‘尾陽文庫(비요문고)’, ‘鄂渚徐氏藏本(악저서씨장본)’ 등의 도장은 이 책이 세종대 경연에서 사용되다 양반가로 흘러간 뒤 임진왜란 때 약탈되었고, 중국으로까지 유입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재단 관계자는 “조사 당시 상하이도서관은 귀중본으로 분류해 보관하고 있었으나 책의 가치, 내용 등을 구체적으로 밝힌 서지사항은 정리가 안 된 상태였다”고 전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도서관은 서양식으로 장정된 ‘고려사’를 중국 서적으로 분류하고 있어 한국 문화재에 대한 인식부족을 드러냈다.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소장 기관의 정보 부족

2014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도서관에서 조사단은 ‘서양식 장정을 한 중국 서적’을 발견했다. 그런데 내용을 들여다보니 고려 역사를 서술하고 있었다. 고려 역사를 정리하라는 세종의 명을 받아 김종서, 정인지 등이 1451년 139권으로 완성한 ‘고려사’였다. 케임브리지대도서관 소장본은 주청영국공사로 재직한 토머스 웨이드의 고서컬렉션에 포함되어 있었다. ‘세계 최고’로 꼽히는 케임브리지대학이지만 한국의 문화재에 대한 정보는 부족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중국, 일본 중심의 동양 인식이 주류인 서양에서 한국의 존재감은 여전히 미약한 게 사실이다. 한국의 문화재가 제대로 된 대접을 못 받는 것도 이런 현실에서 비롯된다. 미국 미네소타대학 와이즈만미술관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와이즈만미술관은 1960∼70년대 한국에서 생활한 에드워드 라이트가 수집해 기증한 한국 고가구 컬렉션이 있다. 그러나 현대미술품 위주의 미술관인지라 한국 고가구를 잘 몰랐고, 화려하고 그럴싸해 보이는 가구를 위주로 전시를 하고 있었다. 2013년, 2014년 세 차례 미술관을 방문한 조사단은 고가구의 가치를 판별하고, 근대에 제작되거나 변형된 고가구를 알려주었다. 미술관은 조사단의 조언에 따라 전시품을 교체했다. 


일본민예관 소장의 목공예품을 한국 전문가가 수리하고 있다. 국외소재문화재 중에는 훼손된 것도 적지 않아 관심이 필요하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훼손과 관심 부족

2014년, 2015년에 조사한 일본민예관의 소장품에서는 시간의 경과에 따라 나무의 수분이 빠져나가거나 병충해를 입어 훼손된 목공예품이 여러 건 확인됐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무게가 지나치게 가벼운 것은 내부에 충해가 심각한 것으로 판단됐다. 고려시대 금니장식흑칠함은 장식의 박락을 멈추기 위한 코팅, 경첩 보강이 급했고, 나무가 뒤틀려 아귀가 맞지 않은 18세기의 문갑도 확인됐다. 재단은 박명배 소목장 등 전문가를 일본민예관에 파견해 해당 목공예품의 수리를 도왔다.


국외 문화재 중에는 상태가 좋지 않은 것들이 더러 있다. 소장기관은 해당 문화재의 제작방식, 재료의 특성 등에 대한 이해나 예산, 전문인력 부족으로 보존처리가 힘들어 우리 문화재 관련기관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한다. 하지만 예산이 많지 않다. 재단의 경우 지난해 관련 재원은 1억7100만원이었다. 민간 후원금 등을 빼면 순수한 정부 예산은 8100만원에 불과했다. 사정이 이러니 국외 소장기관에서 요청한 것의 32%만 지원할 수 있었다.


강구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