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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국민 여동생’을 만들고 향유하는 남자

바람아님 2016. 5. 15. 23:51
[중앙일보] 입력 2016.05.14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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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소설가


‘국민 여동생’이라는 용어가 언제부터 사용됐는지 모르겠다. 처음 들었을 때부터 그 말 속에는 명백히 남성들의 성적 환상이 깃들어 있었다. 국민 여동생으로 선정되는 여자 연예인은 나이 어리고, 성격 온순해 보이고, 애교와 웃음 많고, 성 경험 없어 보인다는 특성이 있었다. 남자 대중은 그런 여자 연예인을 국민 여동생으로 선정한 다음 그 대상을 미화·우상화하면서 욕구 충족을 위한 대상으로 삼았다.

국민 여동생이라는 용어에서 가장 먼저 읽히는 심리 요소는 관음증이다. 여자 연예인의 사진이나 동영상을 휴대하고 다니면서 틈날 때마다 꺼내 보면서 에너지를 얻는다고 말하는 남자가 많았다. 그 관음증에는 또한 롤리타 콤플렉스가 포함돼 있었다. 스스로를 ‘삼촌 팬’이라 정의하는 남자 대중은 조카보다 어린 여자 연예인만을 국민 여동생으로 삼았다. 더욱이 ‘여동생’을 향유 대상으로 삼는 남자들에게는 원가족의 감정 역동에 고착된 미성숙의 이미지가 있었다. 동시에 ‘국민’이란 수식어에는 자신의 쾌락을 집단행동으로 만듦으로써 불안감을 피해 보려는 군중심리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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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이나 오빠 입장으로 특정 연예인을 사랑한다면 그 대상이 어떤 상황에 놓이든 지지하고 공감해 주는 태도를 지녀야 할 것이다. 하지만 국민 여동생을 향유하는 남자 대중은 그 대상이 나이 들거나, 또래 남자와 열애설이 터지거나, 대학에 들어가 똑똑해질 기미가 보이면 곧바로 국민 여동생의 자리에서 밀쳐 냈다. 조용히 떠나보내기만 하는 게 아니라 느닷없이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했다. 관음증 속에는 본래 바라보는 대상에 대한 시기심과 향유하는 쾌락에 대한 불안이 들어 있다. 시기심은 자주 공격성으로 변형되고, 불안감은 곧 박해감을 동반한다. 국민 여동생을 향유하는 남자들은 그 대상에 의해 자신의 성적 환상이 파괴당했다고 느껴지면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는 듯 보였다. 자신이 향유하지 못하는 대상을 차라리 파괴하고자 하는 행동은 이별 폭력과 같은 범주의 일이며 미성숙의 증거다.

근육질의 힘센 여성은커녕 자신과 대등한 여자조차 사랑할 용기 없는 남자들이 거듭 국민 여동생을 만들어 내는 게 아닐까 싶다. 머릿속을 스쳐 가는 국민 여동생만 해도 10명이 넘는다. 언젠가 우리나라 남자 대중이 앤젤리나 졸리 같은 이미지의 여성을 국민 여동생으로 삼는 날이 올까 상상해 본다. 웃음이 난다. 조금만 목소리 큰 여자가 나타나도 ‘센 언니’나 ‘센 캐릭터’로 분류하고 명명하는 세상에서.

김형경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