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건은 열일곱 살 내 마음에 멍울 같은 것을 남겼다. 내가 받은 충격을 이해할 수도, 언어화할 수도 없었지만 부당하고 억울하다는 느낌은 생생했다. 성인이 되어서야 그 사회가 한 여자 청소년에게 무슨 일을 했는지 알게 되었다. 그 사회는 청소년에게 성교육을 하지 않았고, 미성년자의 실수를 감싸 안아 해결해 주려는 관용이 없었다. 그 사회는 학교 규율과 가장의 체면만을 중시했고, 그런 것보다 두 사람의 생명이 소중하다는 인식이 없었다. 급우를 둘러싼 소문이 무성할 때도 상대 남학생은 징계받기는커녕 정체조차 드러나지 않았다. 장차 살아가야 할 세상이 그런 모습이라니 절망스러웠다.
결론적으로 그 태도는 유익하지 않았다. 진실 여부와 무관하게 그런 인식은 나의 세계를 절반쯤 축소시키는 결과가 될 뿐이었다. 가부장제 자체를 이해하려는 노력과 모든 제도 뒤편에 존재하는 개인의 어려움에 시선이 미칠 때에야 비로소 나의 세계관이 온전해지는 듯했다. 한 남성의 ‘묻지마 범죄’에 희생된 젊은 여성을 보며 많은 이가 감정을 촉발당하고 있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그 부당함과 억울함에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그 감정을 남성 사회 전체를 향해 성급히 일반화하지는 말 일이다. 그것이 바로 가해자 남성을 움직인 심리작용이다.
김형경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