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이나 심리학에는 ‘모욕감’이라는 용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 분노, 수치심, 죄의식 등 대부분의 감정에 대해 그 근원을 밝히고 그것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해 연구한 성과가 축적돼 있다. 하지만 어떤 심리학 책이나 정신분석 용어사전에서도 ‘모욕감’을 만난 적이 없다. 물론 나의 박문함을 전제로 하는 말이다. 그리하여 나름으로 모욕감의 실체를 더듬어 본 적이 있다. 모욕감 속에는 우선 나르시시즘과 박해감이 있는 듯했다. 자신의 우월함과 선함을 짓밟혔다고 느끼는 감정이었다. 모욕감 속에는 또한 상대에게 자신을 공격할 힘을 부여해 주는 인식의 오류도 있는 듯했다.
농담처럼, 관용어처럼 남자들 사이에서 “너는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라는 문장이 사용되는 것을 자주 듣는다. 남자들의 사회생활에 모욕감의 요소가 훨씬 많이 존재할 거라 짐작할 수 있다. 경쟁심이 일상적 감정이기에 모욕감이 더 깊고, 책임감이 숙명이기에 참아야 할 모욕감이 더 많을 것이다. 내가 찾아낸 모욕감에 대한 의문의 최종 답안은 이것이다. 참을 수 없는 모욕감이란 없다는 것, 아니 모욕감 자체가 없다는 것. 인간의 존엄성은 타인에 의해 모욕당하거나 훼손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
김형경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