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 교육부 국제교육정보화기획관 / 서경호 서울대 교수 박상찬 KAIST 교수 / 서의호 포항공대 교수 / 정창현 중동고 교장 나혜영 인간교육실천연대 이사 / 홍선관 하버드교육컨설팅 대표 사회 : 김형기 사회부 차장 |
―유학생활하느라 한국과 미국에서 10년씩 번갈아 살다보니 양국 교육에 대해 시뮬레이션(모의실험)을 다 해본 셈이다 .
첫째 아이 빼고 세 아이가 미국 공립학교에 다니고 있고, 아내는 미국에서 직장에 다닌다 .
이런 가족 해체 생활이 벌써 5년째지만, 한국 학교를 돌아보면서
‘무슨 희생을 해서라도 절대로 우리 애들을 여기서 가르칠 순 없다’고 결심했다 .
새벽 5~6시부터 일어나서 밤 늦게까지 공부해서 대학에 들어온 학생을 보면 절망적이다 .
절대로 이런 곳에서, 노벨상은 나올 수 없다 . 창의력도 없고, 토론 능력도 없다 .
미국 교수 시절, 미국의 제자들과 비교하면 토론 능력이 3분의 1 수준이다 .
우리 아이들이 한국 학교에선 말을 안하고 되도록 가만히 있으려고 한다 .
그러나 미국 학교에 가면 활발하게 말 하려고 나선다 .
미국 학교는 ‘격려하는 학교’다 . 교사가 학생을 윽박지르지 않는다 .
국회의원들이 명패 던지고 싸우는 것도 남을 설득하는 훈련을 받지 못하고, 논리적 사고가 배양되지 않았기 때문 아닌가 .
―요즘 학부모들의 최대 관심사는 자녀 조기유학이다 . 유학에 대한 개념이 바뀌고 있다 .
전에는 유학하면 도피유학이니, 외화낭비니 했지만 이제는 ‘도약성 유학’이 화두다 .
유학가려는 아이들 중 3분의 1은 반에서 2~3등 하는 우등생이다 .
한국에서도 일류대 갈 수 있는 아이들이 보장된 인생을 버리고 외국 대학에 도전한다 .
한국에선 간판은 딸 수 있어도 ‘실력으론 도저히 일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안다 .
―조기유학 보내려는 부모들은 한국에서 가르치는 것보다 유학 보내는 게 훨씬 싸고 쉽다는 말을 한다 .
강남에선 상당수 부모들이 아이 한 명당 월 100만원을 과외비로 쓴다 .
심한 경우 과목당 100만원씩 대여섯 과목을 가르치고 월 1000만원을 넘기는 사례도 있다 .
그러고도 고생은 고생대로 한다 . 6년 수험 뒷바라지 하고 나면 학부모들도 늙는다 .
―95년 미국에서 초등학교 3학년짜리 딸과 함께 귀국했다 .
중1 때까지 한국 학교 보내다가 외국인 학교에 보냈다 . 학교에 ‘교육’이 없다고 절망했기 때문이다 .
딸 아이가 들려준 교실풍경은 충격적이었다 . 30여년 전 내가 학교 다닐 때와 다를 게 하나도 없다 .
아이들에게 한국학교는 하나같이 “가기 싫은 곳”이다 .
여전히 권위주의가 지배하고 학교교육에 민주성이 없다 .
교사들의 언어폭력도 심각한 수준이다 . ‘~새끼’는 보통이고, 입에 담지 못할 상소리가 난무한다 .
체벌 역시 ‘사랑의 매’ 수준이 아니다 . 아이를 꿇어앉혀 놓고 따귀를 때리고, 맞다 쓰러지면 일으켜 세워 또 때린다 .
소지품 검사하고, 교문 앞에서 학생들 몸수색한다 . 학생들 인권이 철저하게 유린된다 .
―지금까지의 교육은 “학교에서 하는 대로 무조건 하라”가 전부였다 . 그건 조선시대다 .
도덕시간에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가르치려면, 왜 순종해야 하는지 논리적으로 애들을 설득해야 한다 .
딸애 학교에서 특정한 모양의 운동화를 신지 말라고 금지했다 .
애들이 “왜요?”라고 묻자, 교사가 “무조건 신지 말라”고 했다 .
내가 교장 선생님을 만나 이유를 묻자, 교장이 “개인적으로 학생이 그런 모양의 신을 신는 게 싫다”고 했다 .
사랑의 매, 좋다 . 그러나 납득할 만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 애들도 무조건 반항하진 않는다 .
교실 붕괴는 요새 애들이 이상해서가 아니라, 부모 세대부터 쌓인 모순이 누적된 결과다 .
―교사의 질(질)도 문제다 . 의식이 시대변화, 사회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 .
요즘 학생들은 ‘멀티미디어 키즈(kids)’인데, 교사는 아직도 일제시대 식으로 가르친다 .
교육부가 “변하라”고 강조하면 “왜 강요하느냐”고 반발한다 .
“교육과 자기주도적 학습은 양립할 수 없다”고 극언하는 교사도 있다 .
교육은 다만 ‘교육자가 만들어진 지식을 제공하면, 학습자가 공손하게 받아먹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
아이들이 스스로 탐구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교사가 있다 .
일부에선 “요즘 교육부가 왜 잠잠하냐” “더 밀고나가라”고 한다 .
진보와 보수, 반동이 뒤섞여 힘겨루는 양상이다 .
더 빨리, 더 열심히, 더 급격히 개혁해야 한다 .
그렇다고 옛날로 돌아갈 순 없다 .
―학교에서 일어나는 많은 모순은 입시 때문이다 . 입시 때문에 유치원 교육까지 망한다 .
―과연 제도가 바뀐다고 의식이 바뀔까 . 지난 30년간 숱하게 입시를 바꿨지만 초·중등 교육은 나아진 게 없다 .
제도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 우리 중고생은 가방도 전부 이스트팩 멘다 . 전 국민이 휴대폰 하나씩 다 있다 .
사회 전체에서 나타나는 이런 요소가 입시제도를 만든 거다 .
교육부는 형평성과 교육의 질,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노력해왔다 .
그러나 사회적 인식전환에는 소홀했다 .
우리 사회는 아직도 수업료를 덜 물었다 . 아직 길이 멀다 .
―과학고 애들이 고2 때 다 자퇴한다 . 이유는 딱 한 가지 서울대 가려는 거다 .
내 동료교수도 경북과학고 다니는 자식을 “서울대 의대 보내겠다”며 고2 때 자퇴시켰다 .
강남의 한 입시학원에 갔더니, “우리가 데리고 있는 과학고 자퇴생 숫자가 대한민국 전체 과학고 재학생보다 많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
―나 자신이 서울대를 나왔지만, 서울대를 없애든지, 서울대를 없애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도록 뭔가 이루어져야 한다 .
획일적으로 하향 평준화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 선진국에도 일류대가 있다 .
그러나 하나의 대학이 배타적으로 불변의 정점에 선 체제가 아니다 .
복수의 대학이 다양한 분야에서 경쟁하는 ‘일류대 그룹(cluster)’을 만들어야 한다 .
그들은 자기 생활을 즐기고, 운동 등 배우고 싶은 것 다 배우면서도 좋은 대학 간다 .
스탠퍼드, 버클리 등 명문 그룹이 있다 . 하버드에 못가고 프린스턴에 갔다고 자살하진 않는다 .
이런 식으론 한국에서 어떤 입시제도도 작동하지 않는다 .
만약 입시 제도를 ‘키 큰 순서대로 뽑자’고 바꾸면, 2살 때부터 아이를 키크는 침대에 붙잡아 매고 키 크게 하는
과외를 할 것이다 .
―노벨상 타는 교수가 나와도 포항공대는 절대 서울대를 평판에서 이길 수 없다 .
실제로 교수 1인당 연구실적은 서울대를 앞선 지 오래 됐다 .
열심히 하면 1위가 될 수 있어야 열심히 한다 . 그러나 우리나라는 오로지 서울대다 .
일렬종대로 선 대학 서열이 영원 불변의 권위를 자랑한다 .
대학 밖에선 대학이 우수한 학생을 뽑기만 하고, 좋은 인재로 성장시키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
그러나 사회가 ‘좋은 인재’보다 ‘간판’을 높이 평가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오히려 당연한 현상이다 .
―버클리나 MIT 같은 명문대학에서 박사를 따서 국내 2, 3류 대학에 교수로 간 친구들이 처음 2~3년 열심히 하다가도
술꾼으로 변한다 . “내가 노벨상을 타도 좋은 아이들이 우리 대학에 안올텐데 뭐하러 하냐”고 자포자기한다 .
서울대 교수가 된 친구도 술만 먹는다 . “공부 안해도 좋은 학생 계속 들어오는데 왜 안 놀겠냐”고 한다 .
위에서도 놀고, 아래서도 논다 .
―그래도 서울대와 포항공대 양쪽에 합격한 학생이 포항공대를 택하는 비율이 매년 올라가고 있다 . 희망적인 현상이다 .
이래야 공학도가 공식만 외우지 않고 “물이 왜 위에서 아래로 흐르나” 고민할 여유가 생긴다 .
교장 추천제로 들어온 학생이 특차 출신보다 수능 점수는 더 떨어진다 . 그런데 입학 후에는 훨씬 잘한다 .
입시교육에서 1등 하는 학생보다는, 그보다 좀 못해도 엉뚱한 생각을 하는 아이들이 노벨상 받을 가능성이 더 있다 .
―우리나라에서 진정한 대학교육의 역사는 기껏 15~20년이다 . 서양에선 150~200년이 걸렸다 .
우리 대학이 아직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고 있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 그러나 나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
진짜 문제는 오히려 중·고교에 대한 투자가 대학에 비해 상대적으로 너무 적었다는 점이다 .
60년대 초반 내가 다니던 사립고에 30년 만에 찾아갔더니, 내가 낙서해 놓은 책상이 그대로 있었다 .
대학 교육을 활성화하려면 하부구조에서부터 튼튼하게 투자해야 한다 .
<5면에 계속>
기고자:양근만김수혜 본문자수:2936 표/그림/사진 유무: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