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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편지] 6·25 첫 승전은 우리 것, '대한해협 해전'을 기억하자

바람아님 2016. 6. 24. 08:39

(출처-조선일보 2016.06.24  최경학 대한해협해전기념사업회 사무총장)


최경학 대한해협해전기념사업회 사무총장1950년 6월 25일, 북한은 지상군 남침 이전인 새벽 3시 30분에 특수부대를 태운 해군 전단을 
동해에 침투시켰다. 6·25전쟁이 실질적으로 발발한 순간이다. 
대한민국 해군은 전투함인 백두산함(PC-701)을 급파했고, 최용남 함장(중령) 지휘 아래 
남진하는 불명(不明) 선박을 발견했다. 
무장한 북한군 600여 명을 태운 1000t급 수송선이며, 목표는 부산 침투임이 확인됐다. 
저지를 위한 포격과 교전이 이어졌고, 대한해협까지 추격해 다음 날 새벽 1시 38분 
격침하는 데 성공했다. 이 전투에서 전병익·김창학 승조원은 전사했다.

대한해협 해전 승전은 유엔군 참전 이전에 우리 해군이 단독으로 치러낸 작전으로, 38선 돌파와 동시에 남해안 상륙을 
기도한 북한의 계획을 무산시켰다. 특히 전쟁 초기 일본·미국 등지로부터 물자와 병력을 부산으로 옮기는 해상 교통로를 
차단해 남한을 단기간에 점령하려는 북의 계획을 무산시키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한마디로 자유의 교두보인 부산, 나아가 대한민국을 지켜내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기념비적 전투로 평가받고 있다.

해군은 1988년 대한해협이 보이는 부산 중앙공원(옛 대청공원)에 '대한해협 전승비'를 건립해 백두산함 승조원들의 전적을 
기리고 있다. 하지만 전후 세대는 6·25전쟁을 '지나간 역사'로만 생각하는지 국군의 희생과 부모 세대의 고난에 무관심하다. 
6·25전쟁의 교훈을 후세도 잊지 않게 하는 것이 우리의 책무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6·25 초기 우리의 첫 전투함인 
백두산함이 북한의 무장 수송선을 격침한 대한해협 해전 승전은 소중히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해전 용사 가족의 일원이자 예비역 해병이다. 
아버지(최용남·1923~1998· 해병 소장 예편)가 당시 백두산함 함장이었고, 할아버지(최흥관)는 일제강점기 평북에서 
신문사 지국장을 지내며 독립 자금을 지원했다. 장남도 예비역 해병이고, 차남과 손자는 예비역 해군 장교이다.

해군은 백두산함 승조원들의 정신을 기려 1992년부터 가족·친지·후손과 함께 대한해협 해전 전승 기념행사를 갖고 있다. 
올해 행사에서는 최용남 함장 흉상 제막식이 부산 중앙공원에서 열린다. 이와 함께 당시 백두산함 기관사인 윤자호 상사의 
공적이 확인돼 이번에 무공훈장을 받으며, 전사한 전병익 중사의 이름을 딴 호위함 명명식도 갖게 된다. 
전사한 김창학 하사의 이름을 딴 함정은 이미 2012년 취역했다.

나는 수시로 강의 등을 통해 나라 사랑과 리더십, 그리고 당시 해전의 의의를 알리고 있다. 
우리 가족사가 포함돼 다소 민망함을 무릅쓰고 이 이야기를 전하는 것은 6·25전쟁 발발 66년을 맞도록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 없는 우리의 분단 현실을 다시 한 번 직시하고, 조국을 위해 몸을 던진 선배가 많았음을 알리기 위해서다. 
전쟁은 당연히 없어야 한다. 
그러나 침공해오는 적이 있다면 우리 모두가 백두산함 전사들처럼 앞장서 나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