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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왕세자가 倭王에 만들어준 칠지도

바람아님 2016. 6. 23. 00:06
조선일보 : 2016.06.22 06:15

[고대사의 진실을 찾아서] '헌상설'과 '하사·증여설' 대립

1874년 일본 나라(奈良)현 텐리(天理)시 이소노카미(石上)신궁(神宮)의 창고에서 날 양쪽에 세 개씩 가지가 어긋나게 달려있는 길이 74.9㎝의 칼이 발견됐다. 의례용으로 보이는 이 칼은 두꺼운 쇠녹이 칼날을 덮고 있었지만 군데군데 금빛 글씨가 보였다. 일본 국학을 공부한 궁사(宮司) 스가 마사토모(菅政友)가 끌로 쇠녹을 갈아내자 앞면 34자, 뒷면 27자 모두 61자의 글자가 드러났다.

'태[○]4년 5월 16일 병오 한낮에 백 번 두들겨 만든 철로 칠지도를 만들었다. 모든 병화(兵禍)를 물리칠 수 있어 후왕(侯王)에게 주기 알맞다. △△△ 만들다(泰[○] 四年五月十六日丙午正陽造百練鐵七支刀[生]百兵宜供供侯王△△△[作])'(앞면) '예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칼은 없었다. 백제 왕세자가… 왜왕을 위해 일부러 만들었으니 후세에 전하여 보여라(先世以來未有此刀百濟王世子奇生聖音故爲倭王旨造傳示後世)'(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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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나라 이소노카미신궁에 소장된 칠지도. 길이 74.9㎝로 손잡이를 뺀 칼날 부분은 66.5㎝이며 양면에 71자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 1953년 일본 국보로 지정됐다.
칠지도가 만들어진 '태○ 4년'은 다양한 주장이 나왔지만 중국 동진(東晉)의 연호 '태화(太和) 4년'으로 보아 백제 근초고왕 재위 기간인 369년으로 간주하는 학자가 많다. 이는 백제가 동진에 사신을 보내 외교 관계를 맺은 372년보다 3년 앞선다. 일부 학자는 '태○'를 백제의 연호로 보고 전지왕 4년(408년)이나 무령왕 4년(504년)에 비정한다.

칠지도의 성격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학설이 제기됐다. 일본 학자들은 초기에 "신공황후 때 왜국이 임나7국을 평정하고 그 땅을 백제에 맡긴 것에 대한 보답으로 백제왕이 칠지도(七枝刀)를 바쳤다"는 일본서기의 기록을 근거로 '헌상설(說)'을 주장했다. 하지만 일본서기의 기록이 사실을 왜곡한 부분이 많아 믿기 어렵다는 반론에 부딪혔다. 한국 학자들은 오히려 '제후왕' '후세에 전하여 보여라' 등의 문구로 보아 백제가 왜에 '하사' 또는 '증여'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어쨌든 백제 왕세자가 왜왕을 위해 만들어 준 칠지도는 백제와 왜국이 긴밀한 관계에 있었음을 말해준다.

공동 기획: 한국고대사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