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敎養·提言.思考

<살며 생각하며>아직 세상에는 꽃이 부족하다

바람아님 2016. 7. 8. 23:52
문화일보 2016.07.08. 14:30

문순태 소설가

건강 때문에 한동안 중단했던 아침 산행을 다시 시작했다. 산행이라야 아침 6시부터 한 시간 동안 해발 350m쯤 되는, 생오지 마을 뒷산을 올라갔다 내려오는 것이 고작이다.


일행은 우리 부부와 나보다 1년 늦게 귀농한 친구 부부 등 70대 4명. 자오록한 안개가 걷히자 소쇄하게 불어오는 솔 향기 실은 바람 소리와 함께 뻐꾸기며 지빠귀, 박새가 노래하고 매미들이 자글자글 울어대는, 사운드스케이프 세상이 열리기 시작했다.

“오메, 황금낮달맞이꽃이 피었네.”

친구 부인이 낮에 피었다 밤에 지는 황금낮달맞이꽃을 발견하고는 소녀처럼 소리쳤다. 몇 발짝 걷자 분홍색 바탕에 검은 점이 촘촘한 나리꽃이 다소곳이 고개 숙이고, 화장 붓 모양을 한 엉겅퀴꽃도 얼굴을 내밀었다. 황금빛 금계국이며, 연보랏빛 비비추, 나비 모양의 비수리, 넝쿨 끝에 매달린 인동초 꽃도 만났다.


“아, 장미꽃처럼 향기가 톡톡 쏘네요.”

아내도 땅찔레 꽃잎을 코에 대고 킁킁거리며 수선을 떨었다. 우리는 모두 시골에서 자라 들꽃 이름을 잘 아는 편이다. 그러고 보니 주변에 온통 여러 가지 꽃이 “나 여기 있어요” 하며 손을 흔들고 있는 것 같다. 올해는 유난히 꽃이 많이 피고 빛깔도 곱다. 모든 꽃은 꾸밈이 없어도 예쁘다. 치장하지 않고 저마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서로 먼저 피려고 서두르지도 않고 유유자적 여유롭다.


우리는 호젓하고 가파른 싸리꽃 덤불 길을 추어 올라, 소나무 가지 사이로 무등산이 자오록이 보이는 숲 속 긴 의자에 앉았다. 우리의 은밀한 아지트인 이곳에서 30분쯤 숨을 돌리면서 살아가는 일상이며 자식들 소식, 정치·경제·문화와 국제 문제까지도 거침없이 논평한다. 어떻게 죽음을 맞을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사뭇 숙연해진다. 우리 이야기를 찍어 방송한다면 소름 돋게 재미있을 것이다.


오늘의 주제는 꽃이다.

“꽃은 왜 필까?” 내가 질문을 하고 나서 ‘너는 왜 태어났지?’ 하고 맘속으로 반문하며 피식 웃었다. “벌 나비 유혹하려고” “세상을 아름답게 하려고” “하느님이 인간들에게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려고”. 저마다의 대답이 그럴듯하다. 땅의 기운이 초목을 키우고, 나무와 풀의 맑은 영혼이 꽃으로 피었을까. 어쩌면 꽃은 모든 생명의 아름다운 결정체인지도 모른다. 나는 꽃이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메신저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신들에게 꽃을 바치는 것인지도 모른다. 네팔 여인들은 아침 일찍이 메리골드 꽃을 신께 바친다. 우리나라도 장례식장에서 영정 앞에 흰 국화를 놓는다. ‘헌화가’에서 노인이 수로부인에게 바친 꽃은 철쭉이었다.


나는 다시 무슨 꽃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뜻밖에도 생각이 같았다. 젊었을 때는 장미나 작약, 샐비어(일명 사루비아), 양귀비꽃처럼 화려하고 향기 짙은 꽃을 좋아했는데, 지금은 작고 향기도 없는 꽃들이 좋단다.

왜 나이 들면 작고 보잘것없는 꽃이 좋아질까. 늙어 시력은 나빠졌으나 세상은 더 잘 보이기 때문일까. 사람 보는 눈도 달라졌다. 젊어서는 잘나고 성공한 사람들만 보였는데, 지금은 못나고 가난한 루저들이 더 잘 보인다.


우리는 산에서 내려오다 산자락 묵정밭에 눈이라도 내려 쌓인 듯 흰 꽃들이 무리 지어 피어 있는 것을 보았다.

개망초 꽃. 왜 산에 오를 때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까? 그것은 밭둑이고 마당이고 어디에나 지천으로 피어 있는 하찮은 꽃이라 눈여겨보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옥토 박토 가리지 않고 염치도 없이 아무 데서나 피는 꽃. 마치 버림을 받아 저희끼리 기대어 손잡고 시위하듯 모여 있는 것 같다. 개망초 꽃은 빈 집터나 버려진 땅부터 점령한다. 무리 지어 핀 꽃들이 소복 입은 무희들의 군무처럼 일렁인다. 벌들도 꽃 잔치 하듯 모여들어 웅웅웅 바람 소리를 낸다.


문득 나 어렸을 때 어머니가 밭에서 “이 망할 놈의 망초꽃” 하며 마구 뽑아 밭둑 너머로 던지시던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긴 꽃대에 어울리지 않게 손톱만큼이나 작은 꽃들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저마다 새끼손가락으로 콧구멍을 후빈 다음 계란프라이처럼 꽃 중앙이 노란 개망초 꽃잎(망초 꽃은 노른자위가 없다)의 향기를 맡았다. “상큼하다” “수박 화채 냄새가 난다” “갓난아기 입 냄새 같다” “초경을 앞둔 소녀의 몸냄새 같다”. 표현들이 제각각이다. 개망초 꽃의 청절(淸絶)한 향기가 이렇듯 깊고 자극적인 줄 미처 몰랐다. 나는 비로소 개망초 꽃을 향해 “꽃들아 미안하다, 이제야 너를 알아보았구나” 하고 사과했다.


이 꽃은 1890년 일본이 경인선 철도를 놓을 때 미국에서 수입한 침목(枕木)에 씨앗이 붙어 와, 철로를 따라 피기 시작해 전국에 퍼졌다. 나라 망하게 한 망국초(亡國草)라 한데서, 망초라 불리며 천대받아온 꽃. 더욱이 본디 것보다 못하거나 천하다는 의미를 더해 ‘개’자가 붙여진 개망초. 제초제를 뿌려도 죽지 않을 만큼 생명력이 강하다….


산을 내려오면서 나는 개망초꽃의 새로운 발견과 함께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아직 세상에는 꽃이 부족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지금 우리 사회는 온갖 부정으로 썩은 냄새가 가득하다. 이 세상이 꽃으로 덮이고 향기가 넘치면 사람들이 꽃을 닮을 수 있을까. 사람들이 꽃을 보는 마음으로 살면 세상은 참 아름다울 거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