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自然과 動.植物

[이굴기의 꽃산 꽃글]병아리난초

바람아님 2016. 7. 27. 23:33
경향신문 2016.07.25. 21:23

근래 애꿎은 돼지가 등장하는 뉴스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교육부의 어느 고위공무원이 민중을 개·돼지로 여겨야 한다는 굳건한 소신을 영화 대사를 콕 집어 인용하여 내뱉었다. 미국에서 날아든 돼지 뉴스는 차라리 나았다. 공화당 대선주자인 트럼프의 첫 번째 회고록을 저술한 저자가 자신의 책에 대해 “나는 돼지에게 립스틱을 발랐다”고 쓰라린 후회를 밝힌 것이다. 잊을 만했는데 북한산에서 멧돼지가 내려와 민가에까지 출현한다는 뉴스가 이어졌다.


요즘의 신문을 보면 분탕질을 하는 자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런 자들이 힘 있는 곳에 우글거리는 형국이다. 이런 판이라면 우리 사는 세상이 돼지우리와 별반 뭐 그리 다를까. 이런저런 씁쓸한 심사를 짊어지고 횡성군 청일면으로 갔다.


난다긴다 하는 곳의 지저분한 소식에서 한 발짝 비켜난 한갓진 동네였다. 아침에 일어나니 기이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쪼그만 개와 날씬한 노루가 골목길을 산책하고 있지 않은가. 장뇌삼을 캐러 개(똘이)와 함께 간 주민이 어미를 잃은 채 아사 직전에 놓인 노루(산돌이)를 데리고 와서 우유로 기르는 중이라 했다. 똘이는 제가 처음 발견했다고 산돌이에 대한 정이 각별했다. 상당한 미모의 산돌이에게 이방인이 손이라도 대면 요란하게 짖어댔다.


참 오리무중의 세상이다. 무엇이 이곳에 살고 누가 저곳에 있는가. 말을 못하지만 거짓말도 안 하는 똘이와 산돌이가 아침을 먹으러 2층 계단으로 가는 것을 보고 우리도 근처 운무산으로 떠났다. 항상 구름과 안개에 휩싸여 있는 것 같다고 그 이름을 얻은 산이다. 이름이 제공하는 습기의 덕을 보았나? 운무산에는 귀한 꽃들이 많았다.


그중에서 오늘 내 눈을 사로잡은 건 바위틈에 자라는 병아리난초였다. 바닥에 납작 붙은 넓적한 잎을 딛고 가느다란 줄기가 뻗어올랐다. 물 한 모금 먹고 하늘 한 번 쳐다보는 병아리떼처럼 분홍색 꽃들이 횡으로 총총하다. 저 멀리 첩첩산중을 굽어보며 꿈꾸듯 서 있는 운무산의 병아리난초.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