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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향한 중국의 식탐… 글로벌 식탁 '머니 게임' 시작되다

바람아님 2016. 8. 8. 18:34

(출처-조선일보 2016.08.06  신동흔 기자)

중국서 성공의 상징이 된 소고기, 경제성장으로 소비 급증… 유럽 전체 소비량과 맞먹어
육류 수요 늘며 곡물 시장에 영향… 과도한 농지 확대로 환경 파괴도

'소고기 자본주의'소고기 자본주의|이노우에 교스케 지음|
박재현 옮김|엑스오북스|272쪽|1만4800원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 끝없는 식욕(食欲)은 문학 작품에서 종종 자본주의적 욕망에 대한 비유로 사용되어 왔다. 이 책만 보면 이는 더 이상 비유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은밀한 작동 원리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이윤을 추구하고, 쉬지 않고 소고기를 먹어치운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 주식·채권·금융 파생상품의 투자 시스템이 붕괴되면서 투기 자본은 원자재·곡물·식품 등으로 구성된 생필품 시장까지 흘러들었다. 지금은 안정됐지만 2014년 9월 국제 선물 시장에서 소고기 가격이 역대 최고를 기록했고, 콩은 이미 오래전부터 1~2년마다 최고가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일본 공영방송 NHK의 유명 다큐멘터리 PD인 저자는 '왜 갑자기 도쿄의 소고기덮밥 가격이 오르기 시작했을까'라는 의문에서 시작한다. 미국 워싱턴 정가와 뉴욕의 월스트리트 금융가, 중국 서부의 신흥 도시들, 뉴질랜드·호주의 목축지, 사료 작물을 생산하는 브라질의 거대 초지를 종횡무진 누빈다. 현장 취재를 바탕으로 저자는 소·양·돼지 같은 식육은 물론 콩·옥수수 같은 곡물 가격마저 '머니(money) 게임'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의 소고기 '폭식'

소고기 가격을 끌어올린 것은 단기적으로 중국의 수요 증가 때문이었다. 전통적으로 돼지고기와 닭고기를 단백질 공급원으로 삼았던 중국인들이 경제성장과 함께 소고기에 열광하게 된 것. 미국 농무부 통계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중국의 소고기 소비량은 꾸준히 증가해 현재 유럽 전체 소비량과 맞먹는 수준이다. 소고기 수입량은 2010년부터 2014년까지 5년 사이 6배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마피아의 식습관에서 유래한 뉴욕식 두툼한 소고기 스테이크가 중국 지방 도시 중산층 사이에서 부와 성공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세계 돼지고기의 절반을 먹어치우는 나라가 소고기에까지 식탐을 보이자 나머지 지역에서 품귀 현상이 빚어졌다. 중국 중산층이 더 늘어나고, 유제품 위주 학교 급식 체계까지 완성되면 전 세계 식량난마저 우려된다. 양을 주로 키웠던 뉴질랜드의 목축업자들은 중국 수요에 맞추려고 양 대신 수익이 5배나 많은 소를 키우기 시작했다. 뉴질랜드에서 중국으로 향하는 유제품과 소고기 수출액은 최근 1년간 8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소를 먹는 인구가 급증하는 것은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이는 곡물 시장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닭고기 1파운드 생산에 필요한 곡물은 2파운드인 반면 돼지고기는 4파운드, 소고기는 5~6파운드가 든다. 소고기 소비가 늘수록 사료인 대두박(콩)과 옥수수도 더 많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중국이 자국 내에서 콩·옥수수 재배를 늘릴까. 저자가 만난 중국 국무원 관료는 "중국인의 위(胃)를 채우기 위해 중국 땅에서 사료 작물을 재배하면 우리 환경은 파괴될 것"이라고 말한다.

소고기로 대표되는 우리의 먹을거리마저 이제 투기 자본의‘돈 놓고 돈 먹기’대상이 되어 가격 급등과 급락을 반복하고 있다.
소고기로 대표되는 우리의 먹을거리마저 이제 투기 자본의‘돈 놓고 돈 먹기’대상이 되어 가격 급등과 급락을 반복하고 있다. 이 욕망의 고리를 끊지 않는 한 우리는 지구를 다 먹어치울지도 모른다. /Getty Images 이매진스
세계 식량 시장에서 중국은 미국과 패권을 다투고 있다. 
콩만 해도 중국이 잔뜩 올려놓은 가격을 나머지 국가들이 따를 수밖에 없다. 중국의 가축 사료를 공급하기 위해 
일본 국토 면적의 5배에 달하는 브라질 평원 '세라도'는 무서운 속도로 개발되고 있다. 농가 한 곳이 도쿄돔 9800개 넓이의 
콩밭을 경작하기도 한다. 저자가 직접 찾아가 본 세라도는 이미 대지의 풍요로움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욕망의 고리를 끊자

식량 가격의 상승은 빈부(貧富) 격차 문제를 심화시킨다. 
뉴욕에서는 한 접시 11만원이 넘는 스테이크를 파는 식당 옆 불과 한 블록 떨어진 무료 급식소에 긴 줄이 늘어선 풍경이 
낯설지 않다. 투기 자본은 오로지 가격이 오르기만을 기대한다. 이들이 시장에 개입한 이후 밀의 시장 가격이 37% 
폭등했다는 통계도 있다. 밀 가격 폭등은 이집트와 리비아 등 북아프리카 국가들에서 정치적 불안정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더구나 컴퓨터를 이용해 '작은 이익'을 얻는 거래를 무한 반복하는 단타 거래로 인해 가격 변동의 가능성과 폭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이 책은 글로벌 자본주의의 복잡한 연쇄 작용이 어떻게 식탁에까지 영향을 미치는지 잘 보여준다. 
수치와 통계를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것이 흠이기는 하지만, 현지 취재에 기반한 '다큐멘터리 저널리즘' 기법으로 
써내려간 책은 잘 읽힌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소고기 쟁탈전→곡물 생산 확대→농지 확대→환경파괴로 미쳐 돌아가는 돈의 급류를 내버려둘 수 없다는 주장에도 
동감이 된다. 
다만 마지막에 일본의 소규모 공동체 중심의 자급자족형 경제인 이른바 '산촌 자본주의'를 제안한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산촌 자본주의 외에 좀 더 다양한 대안적 모델을 제시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한 명의 독자로서 MC가 나와서 마블링이 좋은 소고기 스테이크를 한 입 크게 베어 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 
여념이 없는 이른바 '먹방'부터 끊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