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의 기준을 주로 외모로만 평가하는 한국 밖으로 시선을 돌리면 사실 이런 시대가 더 잘 읽힌다. 전에 비해 훨씬 더 젊은 외모를 유지해서가 아니라 나이를 장벽으로 생각하지 않고 젊은 사람들과 섞여 하고 싶은 일을 의욕적으로 하는 노년층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패션 브랜드 아이그너의 이번 시즌 모델이 된 95세의 아이리스 아펠이 대표적이다. 아펠은 트루먼에서부터 케네디, 레이건을 거쳐 클린턴에 이르기까지 9명의 미국 대통령을 위해 백악관 인테리어 작업을 했던 미국의 전설적인 스타일 아이콘이다. 만약 한국이었다면 나이가 나이인 만큼 ‘전설’이라는 타이틀에 만족하며 가끔씩 훈수나 두며 살지 않을까. 하지만 그는 90세가 넘은 지금 젊은 시절보다 훨씬 더 활발하게 활동한다. 유력 패션지 커버를 장식하고, 베스트 드레서로 꼽히고(가디언), 패션 브랜드 모델로 수차례 발탁되면서 말이다. 최근엔 본인 얼굴을 딴 스마트폰용 이모지(이모티콘 비슷한 그림문자)까지 내놓았다.
유독 젊은 이미지에 목숨을 거는 패션업계가 95세 아펠에게 이처럼 끊임없이 구애를 보내는 이유는 그가 젊은 외모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아펠의 상품가치는 젊음에 집착하지도, 그렇다고 젊음에 시비 걸지도 않는 태도에 있다. 나이에 걸맞은 주름과 백발을 당당하게 드러내면서도 자신보다 덜 산 사람들을 결코 가르치려 들지 않는 그 태도 말이다. 아펠은 스타일 조언을 해달라고 하면 늘 “옷을 잘 입는 것보다 행복한 삶을 사는 게 더 중요하다”며 연륜이 묻어나는 얘기를 해준다.
나이에 짓눌려 스스로를 억누르거나 나이를 내세워 다른 이 위에 군림하는 대신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하며 세상과 소통하려는 자세, 그게 95세 아펠을 여전한 현역으로 만드는 이유 아닐까.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